골프

곤지암 CC에서의 실전 라운딩

양현재 사색 2011. 4. 18. 20:42

배영식 의원이 영국 재경관으로 있던 시절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골프는 미팅이다'. 여기서 미팅이란 우리들 세대에 남녀간의 공개적, 집단의 만남을 의미한다. 요즈음 학생들도 미팅이란 걸 하는지 모르겠다. 그 시절 우리는 미팅이 있는 날에는 한껏 멋을 부리고 쌈짓돈을 챙겨 으시대곤 했는데, 무엇보다도 이 날 소위 퀸카(여자편에서는 킹카)를 건질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미팅의 자리에 나서는 긴장감은 지금 돌이켜 보아도 짜릿한 그 무엇이었다. 골프라는 요상한 운동도 이런 막연한 기대와 긴장감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사실 골프장까지 갈 때까지 오늘은 어째 베스트 스코어를 기록할 것 같은 환상이, 혹시나 홀인원이라는 걸 소 뒷걸음에라도 건질까 하는 꿈같은 기대를 갖곤 하는데, 자기 핸디가 어디 가남? 라운딩을 마치면서는 "어휴, 오늘도 역시나 이구나"하는 탄식을 짓곤 하면서도 "다음 기회에는 기필코 꿈이여, 다시 한번"을 읊조리는게 영낙없이 미팅과 닮은꼴이니, 배의원의 지적이 타당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토요일 한 나절을 친구의 친절한 레슨으로 골프채 날을 곤두 세우고 나선 일요일 골프 라운딩은 내겐 뭔가 보여 줄 절호의 기회가 이닐 수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나'이었다는 것이다. 드라이버가 잡히면, 숏 아이언이 말썽이고, 퍼팅이 발목을 잡는다. 이건 아닌데, 아닌데 하다보니 기대만큼 내 자신의 어이없는 플레이에 실망만 큰 법. 꾸준히 공을 들여야 할 일이고, 무엇보다도 마인드 콘트럴을 할 일이다. 3홀씩을 쪼개서 18홀을 매니징하라는 유 사부의 말씀을 또 망각하고 말았다. 3홀이전의 것은 잊어버리고 지금 3홀에 집중하라는 말씀.

 

곤지암 CC는 양잔디 페어웨이여서 아이언 샷을 정확히 찍어 쳐 주어야 한다. 채를 떨어뜨려 주어야 하는게 포인트다. 영국의 골프장들이 이곳처럼 양잔디라서 귀국 후에는 꽤나 익숙했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그 반대가 되고 말았다. 11시 51분에 티엎을 했는데 4시간만에 주말라운딩을 마쳤으니 회원관리가 그만큼 훌륭하다는 이야기이다. 곤지암 CC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인데 그 때마다 만족도가 높은 곳 이다.

 

유사부가 밤 늦은 시각에 오늘의 결과를 묻는 문자를 보내왔다. "희망을 보았어. 계속 지도편달 부탁해!" 답장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