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내의 입원

양현재 사색 2011. 5. 9. 01:37

5월5일(목) 내자가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을 했다. 지난 3월31일 부부가 함께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검진결과 담낭결석이 심하니 곧 수술을 받으라는 권고를 받은 것이다. 평상시 소화기능이 떨어지는 편이었으나 이 정도로 심한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저 일상의 틀에 얽매여 있다보니 정작 가장 중요항 것에무심한 때문이다. 내자는 원래 낙천적 성격인지라 웬만한 근심거리에도 놀라울 정도로 대범한 편이지만, 이번에도 스스로 삼성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을 방문하여 상담을 받더니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덜컥 수술일짜를 잡아놓은 것이었다.

 

5월5일 입원 당일날 오후 2시까지 아이들 영어수업을 천연덕스럽게 마치고는 둘째 딸 승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세모녀가 입원수속을 마쳤다. 나는 이날 골프약속이 있어 부랴부랴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하니 이미 이 지경이 된 것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지 않았느냐며  공연히 짜증을 부려 보지만 쓸데없는 헛발질이다.  두고두고 핀잔을 받을 결정적인 과실을 자초하고 만 것이다.

 

아이 셋을 낳을 때를 빼고는 생전 처음 수술대에 오르는 내자의 모습에 내가 먼저 비장한 마음이 든다. 다음날 아침 8시 드디어 홀로 침대에 누운채로 수술실 문을 들어서는 아내를 보니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왈칵 복받쳐 오른다. 이제는 보호자 대기실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수술진행상황을 지켜보는 일 밖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8시25분 수술시작. 1시간 15분만에 수술완료. 9시 44분 회복실 이동. 10시 의식회복, 병실 이동. 1시간 35분동안 보호자 대기실에서 수술진행상황을 대형 모니터화면을 통해 지켜보는 우리 가족은 오로지 애타는 심정으로 병실이동을 알리는 어나운스먼트가 나오길 기다렸다. 병실이동은 곧 수술이 무사히 끝나서 의식을 회복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수술실 앞으로 달려가니 내자의 안색이 창백하다.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13층 1363호 병실로 돌아왔다. 2인실 병실이지만 옆 환자와 가족이 몹시 신경이 쓰인다. 이 사람들은 우리 보다 하루 먼저 입원을 해서 부인이 갑상선수술을 받은 듯하다. 하루 차이의 입실이지만 우리는 마치 셋방살이 하는 기분이다. 창측의 병상을 그들이 차지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TV 채널선택권이나 냉장고 사용 등등 그들은 마치 주인인양 한다. 게다가 그 환자의 친척, 친지들이 번갈아 가며 병문안을 한다며 몰려와 한참을 소란을 피우니 이제 막 수술을 마친 우리네는 불편하기가 짝이 없다. 내자가 병실료 차액이 만만치 않다고 고집만 부리지 않았더라면 당장 1인실로 옮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자가 저리 수술을 마치고 혼자서는 자기 한 몸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고통스러워 하고 있을 때 두 딸들이 있어 여간 고마울 수가 없다. 큰 딸애 시진이는 징검다리 연휴인 5월6일(금) 회사에 휴가를 내고 제 어머니 옆을 줄곧 지켜 주었다. 화장실가는 일이며 옷 갈아입는 일, 식사 도와주는 일 등은 나보다는 딸들의 손이 훨씬 세심하고 제 엄마도 편안해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는 딱히 하는 일이 없다. 기껏해야 침대 머리부분을 올리고 내린다든지, 담요를 정리하는 일 정도 뿐이고 공연히 병실과 휴게실만 왔다갔다 한다. 집에 있을 때는 모든 것이 제 엄마의 손이 가야지만 됐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딸들이 알아서 척척 자기들 몫을 해 치운다. 새삼 애들이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가족이 어렵고 힘들 때 가족 구성원들간에 끈끈한 가족애가 이런 식으로 발휘되는 것을 확인하게 되니 가장으로서 뿌듯함도 갖게 된다.

 

요즈음 서울의 대형 종합병원들은 대부분 내부시설이 예전에 비해 많이 현대화되었고, 또 환자나 가족들이 안락하게 치료를 받으며 머무를 수 있도록 편의시설도 잘 갖추고 있는 편이다. 세브란스병원도 곳곳에 휴식공간을 잘 마련하고 있어서 마치 시내 어느 카페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창문 밖으로 내다 보이는 산과 녹지도 환자들에게는 더 없는 편안함을 가져다 줄 듯 하다. 

 

병원에 있다 보면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나 간호사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개인병원에서야 기껏 한, 두명 정도의 의사와 약간의 간호사 정도 뿐이지만, 대학병원의 경우에는 의사만 해도 교수, 전문의, 레지던트, 인턴  등으로 다양할 뿐 아니라,  간호사들도 직접 투약이나 치료보조업무 등을 담당하면서 수많은 이들 의료 전문가 집단이 상호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게 경이롭기 까지 하다.  병원업무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이들의 전문성에 일종의  존경심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이 시스템적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이 곳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부와 수고를 거쳤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자기 집안에서는 자랑스러운 아들들이고 딸들일 것이다. 그러나, 한결같이 지치고 피곤한 그들의 모습들은 이런 자부심의 다른 이면을 보는 것 같아 애처로운 마음도 들었다. 세상에 명예라든지, 부라는 것이 어디 공으로 얻어지는 것이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