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인도로 가는 길(기행7-3) - 하늘과 바람을 담은 판공초

양현재 사색 2011. 9. 28. 00:02

레에서의 사흘째 아침. 날씨는 화창하고 하늘은 맑다. 어제 먹은 저녁이 탈이 났는지 새벽녘에 잠을 깨어 밤새 화장실을 연신 들낙거렸다. 출발할 때부터 걱정해 온 인도산 물갈이 설사병이 드디어 찾아 온 것이다. 우선 서울을 떠나올  때 처방을 받아 조제해 온 수인성 장염약을 먹고 몸 상태를 지켜본다. 기운이 없는 건 차치하고 수시로 화장실을 들낙거려야 하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이런 몸 상태로는 오늘 단체 일정에 참여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오늘 일정은 판공초방문이다. 편도에만 5 ~ 6시간이 걸리는 힘든 여정이다. 더욱이 5,000m이상의 고산지역을 통과해야만 한다. 

 

아픈 배를 부여안고 고민에 빠졌다. 갈 것인가 남을 것인가? 선뜻 결심이 안서는데, 룸메이트는 간곡히 만류를 한다. 나는 한 편으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출발 마지막 순간까지 남은 시간 동안에 제발 복통이 잦아들기를 기대하며 샤워를 하고, 옷을 찾아 입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일행들이 안색을 살피며 괜찮겠냐며 모두 걱정을 해준다. 나는 내 자신의 인내를 믿으며 '그래, 가 보자!'며 용기를 내 본다. 일행들에게 폐나 끼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이 일정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화장지와 물휴지를 배냉에 챙겨넣고 '자, 출발이다'.

 

전체 일행 중에서 오직 절반 가량만이 이 일정에 나섰다. 그만큼 판공초까지의 길은 험난할 것이라는 얘기다.

 

레에서 154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판공초(Pangong Tso)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기수호(汽水湖 ;바닷물과 민물이 혼합되어 염분이 적은 호수)로  그 길이만 무려 154km에 이른다. 이 중 134km는 인도령이고 나머지는 중국령 티베트다. 잘 알려진대로 히말라야는 6천만년 전에는 원래 바다였던 곳으로, 인도와 아시아대륙이 서로 충돌하면서 융기해 버린 부분이다. 판공초는 이 당시 바다밑바닥이 융기를 하면서 바닷물이 가두어져 호수를 이루게 된 곳으로 해발 4,205m다. 이 때문에 이곳의 물을 맛보면 약간 짠 맛이 나고, 바다갈매기도 히말라야 고지대에 살아갈 수 있도록 진화를 했고, 과거 바다물고기의 후손들이나 작은 새우들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그냥 판공초에 갇힌채 6천만년 동안 진화를 해왔다는 이야기다.  

 

2009년 개봉한 인도영화 '세 알간이(3 idiots)'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판공초는 레쪽을 방문한 여행객들에게 가장 큰 감명을 준 곳으로 손꼽힐 만큼 아름다운곳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여인과 판공초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뜨거운 해피엔딩을 하던 모습이 너무 짜릿해서 잊혀지질 않는다.

비록 목적지까지의 접근이 만만치는 않았으나 가는 도중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거친듯 신비한 풍광은 그 힘들고 지루함을 보상받기에 충분했다. 계절에 따라 집을 옮겨다니는 유목민들과 방목하는 양떼, 말떼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명의 찌꺼기를 뒤집어 쓴 내 모습이 가소로워 진다.

 

판공초일대는 지금도 영토분쟁이 지속되고 있어 이곳을 방문하기 위하여는 검문소에서 방문허가(permit)를 받아야만 했다. 가는 길 중간중간에는 영토분쟁중에 희생된 군인들을 추모하는 비석들이 세워져 있는걸 볼 수 있었다. 지극히 원시적인 자연속에서 무력충돌을 벌이고 있는 인간의 야만성이라니.

 

판공초로 가는 길에 자동차로 갈 수 있는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길인 해발 5,320m의 창라(Chang La)를 지나게 되었다. 이번 여행 일정중에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온 것이다. 정상을 넘어서 내리막길을 달리자 초원지대가 나타났다. 우리 운전기사는 들판에 잠시 차를 멈추고 우리들을 차밖으로 안내한다. 운전기사 아저씨는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던듯 동물 땅굴앞에서 과자먹이를 들이밀자 토끼보다 조금 큰 이름 모를 야생동물이 조심스럽게 모습을 나타냈다. 우리 일행들은 이 신기한 모습에 우루루 땅굴앞에 둘러서서 사진을 찍으며  한바탕 야단법석을 벌였다. 오랜 여행길에 지친 마음을 잠시 잊고 동심으로 돌아간 모습들이다.

 

드디어 판공초에 도착했다. 먼 길을 덜컹거리며 달려온 끝에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판공호수는 파란 하늘, 호수를 끌어안은듯 둘러친 설산과 조화를 이루며 광대하되 사람을 절대로 압도하지 않았고, 아름답되 결코 조잡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판공초는 호수이며 바다고, 바다이며 호수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그 물빛을 달리하는 호수를 내려다 보노라면 '세상에 파란색이 이토록 다양했던가' 하는 생각을 갖게끔 한다. 이 외로운 히말라야의 준봉에 하늘과 맞닿을듯 끝없이 펼쳐진 호수는 쪽빛 하늘과 설산의 바람을 담은 채 태초의 신비로 그렇게 내게로 다가왔다.

     

이곳까지 오는 도로가 어찌나 험했던지 판공초에 도착하여 펑크가 난 타이어를 교체해야 했다. 운전기사 아저씨는 전혀 짜증내지 않고 웃는 얼굴로 구경이나 열심히 하라며 오히여 우리를 안심시켜준다.  운전기사 아저씨의 호의로 호수 저편까지 차를 몰아 호수가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을 둘러보았다. 참 선한 분이다.

 

출발할 때 걱정했던 대로 내 몸 상태는 여전히 온전치 못했다. 차에서 내리며 땅바닥에 똑바로 버텨서질 못하고 곧 쓰러질듯 계속 휘청휘청대었다. 급히 달려온 일행분이 공진단 반 알을 입에 넣어주었다. 숙소로 돌아왔지만 입맛이 전혀 없다. 일행 중 한 분께서 애처로워 보였던지 어디에선가 인도쌀을 구해와서 미음을 끓여 주셨다. 김가루를 미음에 뿌리니 냄새가 고소하다. 몇 숟가락 뜨지 못하고 물러 앉자 뜨거운 미음 국물이라도 훌훌 마셔야 한다며 강제로 숟가락을 쥐어주었다. 이 분의 정성에 감격하여 더 아프지 말아야 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사실 오늘 몸 상태로 판공초까지 다녀오는 것은 절대로 무리였지만 이 기회를 놓쳤더라면 두고두고 실망이 컸을 것이다. 기운이 없어 판공초까지 가는 길의 풍광과 판공호수의 경치을 좀 더 멋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점이 아쉽긴 하지만.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자동차길, 창라(Chang La)는 해발 5,320m에 있다

 

 *설산이 바로 앞에 있다

 

 

 *이 지역은 현재도 국가간 분쟁지역이라 이곳을 방문하려면 방문허가증(permit)을 받아야 한다

 

 

 

 *초원에 방목하는 양떼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토끼보다 조금 큰 야생동물이 먹이를 주자 땅굴에서 나와 보습을 드러낸다. 여행에 지친 사람들을 잠시 동심의 세계로 인도하다 

 

 *드디어 판공초에 도착

 

 

 

 

 

 *호수와 쪽빛 하늘, 호수를 품은 산등성이 그리고 사람. 아름답다!

 

 

 

*어느 나라 아저씨인지 판공호수에 첨벙 몸을 던져 한바탕 수영을 하고 나온 모습. 평생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호수 저 편에 자리잡은 한적한 마을에서 호수를 바라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