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인도로 가는 길(기행12) - 히말라야의 빛이 된 영원한 산 사나이

양현재 사색 2012. 2. 26. 14:13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다 2011년 10월18일 실종된 박영석 원정대장(48)과 신동민(37), 강기석 대원(33)에 대한 합동 영결식이 11월3일 오전 10시 '산악인의 장'으로 치러졌다. 산악인으로서 치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의 장례식인 '산악인의 장'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히말라야의 끝자락을 따라 북인도를 여행하고 돌아와 그 때의 감동을 정리하고 있던 차에 접한 이 3분의 악우(岳友)들의 조난 소식은 내게 남다른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국내 선후배 산악인들의 12일간의 수색작업도 헛되이 그들은 갔다. 깊은 눈 속으로. 히말라야의 전설 "예티"가 되어.

 

동아일보는 사설로써 세계 산악, 탐험 역사에 빛나는 박대장의 업적을 조명하고 세명의 산악인과의 안타까운 이별을 애도하였다.

박대장은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14좌 및 7대륙 최고봉 완등, 세계 3극점(최고봉 에베레스트, 남극점, 북극점) 등정에 성공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산악, 탐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는 서양인들이 주도해 온 산악, 탐험사에 한 획을 그은 동양인이었다. 라인홀트 메너스가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했던 시기가 1986년이다. 박대장이 2001년도 최단기간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했을 때 애써 외면한 세계 산악, 탐험계도 2005년 북극점을 끝으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도전은 그랜드 슬램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히말라야 14좌에 새 루트를 뚫어 인류 최초의 발걸음을 남기기 위해 다시 히말라야로 향했다. 2009년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새 루트로 오르는데 성공해 첫 코리란 루트를 개척했다. 2010년 실패에 이어 두번째인 이번 안나푸르나 남벽등정도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갖고 행동에 옮겼던 진정한 산악인이었다. '잔혹한' 안나푸르나 남벽은 이번에 이 1%를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험난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아직도 한없이 나약하기만 한 것일까?

 

지금까지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한국인이 5명이나 되고,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한 한국인이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을 정도지만 박대장은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산악이었다. 경쟁자들이 하나 둘 고산등반을 접은 후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겪고 동료대원들이 사고를 당했어도 박대장은 "산악인은 산에 못가면 사는 맛이 없다"며 현역으로 남아 있기를 끝까지 고집했다. 그는 후배를 키우는 일에도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그의 원정대에는 항상 젊은 산악인들이 동행했단다.

함께 실종된 신동민 대원은 강인한 힘에 노련미를 갖춰 한국 산악계의 차세대 주자로 꼽혔고, 강기석 대원 역시 기술이 뛰어난 실력파여서 국내 산악인들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온갖 악조건에도 굴하지 않는 인내, 도전, 개척 정신은 참으로 값지다. 박대장은 도전정신을 몸소 실천한 우리의 영웅이자, 영원한 산사나이로 남을 것이다.

 

히말라야에는 지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새들이 있다고 한다. 그 새들은 다른 새들처럼 먹이를 찾아 다니지도 않을뿐더러 바위위에도 앉는 법이 없다고 한다. 그저 설산(雪山)위 눈밭과 눈부신 빙벽위를 날아다닐 뿐.

그래서 그 새들이 언제 둥지로 돌아가고 무엇을 먹는지조차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다만, 그 새가 죽을 때는 부리와 온 몸에 눈을 묻혀 마치 '눈 새'처럼 허공에 떠 있다가 태양이 솓아오르는 순간 몸에 묻은 눈이 녹아버림과 동시에 자신의 육체도 함께 증발해 無로 사라진다고. 원주민들은 그것을 그 새의 죽음이라 하지 않고 '빛으로 돌아감'이라 한다고.

이렇게 '눈 새'들이 빛으로 돌아가듯, "히말라야의 거벽에 새로운 길을 꿈꿔 온 박영석, 신동민, 강기석 세 산악인은 산이 되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들의 영면을 짐심으로 애도한다.

 

"마음이 늘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친구

못난 나를 비웃기보다는 사랑으로 감싸안아 주던 친구

불평을 늘어놓기 보다는 앞서 이해하고 애써 비위를 맞추려던 친구

내가 좌절하거나 방황할 때 손을 내밀어 용기를 주던 친구

대가를 바라거나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나의 이름을 팔지 않는

기쁠 때보다 슬플 때 먼저 찾아주던 친구

나에게 허물이 있더라도 미워하지 않으며

늘 나로 인해 아파하고 또 기뻐할 수 있던 친구

이해하고 용서하고 보살펴 주는 일에 너그러운 친구

외적인 아름다움 보다는 내면의 향기를 더 소중히 여기던 친구

우울하거나 쓸쓸할 때 환한 미소로써 나를 달래주던 친구

그리고 영원을 부정하지 않던 친구"

 

자신의 가슴을 가끔은 부담없이 열어 보이던 그 사람이 내게는 진정한 보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