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로 가는 길(기행15-4) - 인도 속의 작은 티벳, 다람살라(맥그로드 간즈)5
점심나절이 되자 하늘이 맑게 개었다. 쭐라캉앞을 지나 밖으로 연결되는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순례길인 '코라(Kora)'로 이어진다.
코라라는 말 자체에 '돌다'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하는데, 원래는 티벳 본토의 수도인 라사(Lasa)에 소재한 포탈라궁(Potala Palace)의 외곽을 돌며 기원을 드리던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마침 일행 두 분을 만나 우리 네사람은 함께 코라룰 따라 순례길에 올랐다.
순례길은 시골 뒷동산의 둘레길마냥 정겹고 한적하기까지 했다. 비온 끝이라 공기는 한결 상쾌하고, 잠시 머리를 들어 올려다 보니 파란 하늘 아래 히말라야의 설산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코라를 따라 티벳 승려분들과 노인분들의 순례행렬이 한가로이 이어진다. 조국을 떠난 실향의 아픔, 고단한 타향살이에도 불구하고 옴마니반매흠 진언을 읇조리며 기도를 올리는 이 분들의 얼굴은 너무 곱기만 하였다. 마치 한나절 동네 산책이라도 나선듯 천연한 표정. 간절하나 '매달림'같은 것은 결코 없다. 아! 신비롭지 아니한가?
백척간두(百尺竿頭)의 끝자락에 서서 오로지 앞만을 보며 치열하게 살아온 누더기 내 낡은 인생을 곰곰히 되짚어 보았다.
일상의 매순간이 마치 끝장 승부처나 된듯.... 경직, 집착, 결벽, 아집, 냉정, 긴장, 비타협... 이런 식으로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으면 나약해지는 줄, 무너지는 줄, 그래서 곧 패배하는 줄로만 알았다. 난 늘 그런 식이었다.
여유, 관용, 융통성, 따뜻함같은 것들과는 친하지 못한 채 갑속에 갇힌 부끄러운 삶이 아니었던가? 주위의 사물에 좀 더 따스한 눈길을 주지 못하고 어찌 그리 옹졸하게 살아왔을까?
옴마니반메흠(om mani padme hum)! 육자진언(六字眞言; 육자대명주)인 옴마니반메흠은 천수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의 진언이다.
문자적인 뜻으로는 "연꽃 속 보석이여"라는 말로서 연꽃은 순결과 정직을 상징하고 보석은 부처님의 자비를 상징하는데, 이는 반드시 따라야 할 기본 덕목 즉, 선행과 자비를 평생에 걸쳐 행하겠다는 고백인 것이다.
이 '옴마니반메흠'의 글자 마다에는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천상의 육도(六道)를 벗어나게 하는 힘이 있어 윤회로부터 해탈하게 하는 기본적인 주문이다. 이 주문을 외우면 머무는 곳에 한량없는 불보살과 신중(神衆)들이 모여서 보호하고 삼매(三昧)를 이루게 될 뿐만 아니라 7대 조상이 해탈을 얻으며, 본인은 육바라밀의 원만한 공덕을 얻게 된다고 한다.
보통 티벳인들은 이런 뜻과 상관없이 그냥 많이 외우기만 하면 그 자체로 영험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죽을 때까지 일상생활 가운데 이 진언을 무수히 게송한다고 한다.
코라의 중간길에 티벳사원인 깔라차크라 곰파(Kalachakra Gompa)를 만났다. 다람살라의 아랫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한적한 곳이다.
적막하기까지 한 사원광장에 마니차(manicha; 마니보륜)가 줄지어 서 있다. 마니보륜은 경전이 쓰여진 천을 원통안에 넣고 겉은 귀한 보석으로 장식한 것으로 아무렇게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의식을 치르고 나서야 사용하게 된다고 한다.
마니보륜을 돌릴 때는 반드시 시계방향으로 돌려야 하고 한 번 돌리는 것을 염불을 한 번 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많이 돌리면 돌릴수록 큰 공덕을 쌓는 것이라 여긴다.
나와 동료는 천천히 마니차를 돌리며 함께 옴마니반메흠을 게송하였다.
남해 금산의 어느 바위끝에서
보랏빛 노을을 가슴에 안았다고 해도 좋아
혹은 하얀 햇빛 얼굴 가득히 담은채
설악의 봉정암을 오르는 길이라고 해도 좋아
당신의 어여쁜 손을 잡고
아늑한 얘기가 하고 싶어
아니 그냥 당신의 그 맑은 눈을 들여다 보며
마구 눈물을 글썽이고 싶어
민물처럼 온 몸을 스며 흐르는
애절한 그리움이여
바람결에 스치는 한 점 잠깐 생각에도
나른해지는 내 사랑이여
사원을 내려와 다시 가던 길을 걷는다. 코라길의 모퉁이마다에는 옴마니반메흠을 그려넣은 자연석이나 가지가지 크기의 돌맹이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채색을 한 글자들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피곤한 다리를 쉴겸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있는데 티벳 노인 한 분이 우리 앞을 지나간다. 그런데, "아이구나!" 이 할아버지 점퍼에 '수도기계공고 마크'가 새겨져 있는게 아닌가? 이 학교 어느 학생의 손을 거쳐 머나 먼 이곳까지 온 것이다. 의사소통이 안되니 우리 말뜻을 알아들을리 없는 이 할아버지는 '이 사람들이 왜 이리 반가워 하는가?' 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시다. 학생의 한글 명찰까지 그대로 붙어 있는 이 점퍼가 어떤 경로를 거쳐 이 분께 전달되었는지 참으로 신기하고 재미있을 뿐이었다.
어느 길 모퉁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조약돌에 옴마니반메흠을 직접 그려넣고 있는 티벳인을 만났다. 순례자들에게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소박한 야외 공방인 셈이다. 나는 예쁘장한 조약돌 2개를 구입하였다. 조약돌을 손바닥에 가만히 올려 놓으니 따뜻한 온기가 전해오는 듯 하다. 이 녀석들이 이 여행길의 말없는 증인이 되어줄까? 아니! 너와 나, 우리의 아득한 태고적 인연의 든든한 지킴이가 되어 주려무나!
코라의 끝자락 길에서 너무나 경이로운 광경을 목격하였다.
걸음도 제대로 옮겨 놓지 못하는 검은 털빛을 가진 늙은 소 하나가 순례자들의 무리에 섞여 코라를 따라 걷고 있는게 아닌가? 거친 숨을 몰아 쉬면서 겨우 몇발짝 걷다가 그 자리에 눕기를 반복하는 모습에서 목숨이 붙어있는 한 이 순례를 계속해야만 한다는 어떤 결의같은 것마저 느껴져 왔다.
미물에 불과한 저 소마저 참회하며 구원을 간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유난히 큰 눈망울에 슬픔같은 간절함이 가득해 보인다. 이럴 수가 있을까?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 몸에 전율이 느껴지며 처음으로 윤회(輪廻;reincarnation)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일정한 깨달음, 경지 또는 구원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 깨달음, 경지 또는 구원된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하여 이 세상으로 재탄생을 반복하며 생로병사의 고뇌를 벗어나지 못하는 윤회의 고리. 나는 이 육도의 길, 어디메쯤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일까?
갖은 번뇌와 삼악도(三惡道)를 헤매고 있는 저 늙은 소가 애처롭다. 어서 속히 이 윤회의 고리를 끊고 미계(迷界)를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해 주었다. "옴마니반메흠, 옴마니반메흠, 옴마니반메흠"
마니법륜(마니차)
깔라차크라 곰파
사원광장에서 내려다 보이는 다람살라 아랫마을
곰파에서 한 컷!
옴마니반메흠 육자대명주
코라 순례길에서 구입한 옴마니반메흠이 그려진 조약돌 2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