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목단봉 어여뿔사 반기어드니
자단향 풍겨나는 태백산일세
황지로 공연으로 넘치는 물이
흘러서 낙동강을 이룬다하네 - 노산 이은상-
1월27일(일) 회사 임직원 5명과 함께 피닉스 산악회(www.pheonixmt.co.kr)를 쫓아 민족의 영산, 태백산 겨울산행을 나섰다.
나로서는 벌써 세번째 태백산행이다. 공교롭게도 세번 모두 겨울 산행이 되었다.
첫번째는 대한화재 인사담당임원일 때 노사화합 한마당 행사로, 두번째는 ERGO다음손해보험의 대표이사로 부임한 직후 부장급이상 직원들을 이끌고 였다. 두 번의 산행 모두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직원들간 각오와 결의를 다지기 위한 어떤 비장한 목적의식이 깔려있었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눈이나 실컷 밟아보자는 제안에 몇몇이 의기투합이 되어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산행이었다.
토요일에 이어 연이틀간 매서운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강원도지역은 영하 17도까지 수운주가 떨어졌다. 그래도 최근에 이 지역에 내린 두차례의 폭설로 당초 기대했던 대로 눈구경은 제대로 하게 되었다. 마침 1월25일(금)부터 2월3일(일)까지 10일간 제20회 태백산 눈꽃축제가 열리고 있단다.
오전 10시30분, 유일사 주차장에 들어서니 관광버스, 자가용들이 뒤엉켜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혹한이 무색할 지경이다.
산행코스는 '유일사 매표소 - 주목군락 - 장군봉 - 천제단 - 단종비각 - 망경사 - 당골매표소 - 석탄박물관'에 이르는 8.4km구간이다.
유일사 매표소를 통과하자 잠시 숨고를 여유도 주지않은 채 곧바로 가파른 오르막길로 치고 오른다. "허억 ~ 허억~!"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오지만 발걸음을 지체할 수 없다. 앞, 뒤로 늘어선 인파속에서 그냥 밀려 올라가는 기분이다. 추운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칭칭 중무장을 한 채 태백의 능선에 줄지어 선 남녀노소의 거대한 군단들. 어떤 열정이 이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았을까?
나는 이 신기한 광경을 목도하면서 우리 민족 내면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꺾이지 않는 불굴의 유전자를 생각해 보았다.
정말 대단한 민족이 아닌가?
'크고 밝은 뫼'라는 뜻의 태백산(太白山)은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대현리와 태백시 문곡소도동, 그리고 강원도 영월군 상동면 천평리와 접경을 이루며, 이 산을 중심으로 함백산(1573m), 청옥산(1277m), 구룡산(1345.7m) 등과 함께 주위 20km 내외에 1,000m 이상의 봉우리들이 100여개나 연봉을 이루고 있어 하나의 거대한 산지를 이루고 있다.
태백산은 한반도 척량산맥인 태백산맥의 주봉이며, 이곳에서 소백산맥이 갈라져 나와 남서쪽으로 발달한다. 이 산에서 발원한 물이 영남평야의 젖줄인 낙동강과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한 한강, 삼척의 오십천을 이루니 국토의 종산(宗山)이자 반도 이남의 모든 산의 모태가 되는 뿌리산이라고 할 수 있다.그리하여 태백산은 우리나라 12대 명산의 하나로 꼽히며, 예로부터 영산(靈山)으로 추앙받아 왔던 것이다.
남성다운 중후한 웅장함과 포용력을 지닌 육산(肉山).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걷다보니 어느덧 흰눈으로 뒤덮힌 주목군락의 설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生千 死千)이라는 주목(朱木). 몸통은 뒤틀리고 속은 비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폭풍설한에 시달리며 천년을 견디어 온 고사목들은 무상한 세월을 묵묵히 일러주고 있을 뿐이었다.
태백산 정상인 장군봉(1567m)에 올라 산 아래를 굽어보니 눈덮힌 준령들이 마치 살아 꿈틀대는듯 장대하다. 장군봉 비석앞에는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다시 한번 야단법석이다. 그곳을 밀려나듯 벗어나니 곧바로 천왕단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번 여행길에 앞서 친구 김영덕 사장으로부터 얻어 들은 바로는, '태백산 천제단'은 천왕단을 중심으로 북쪽 300m 떨어진 장군봉에 있는 장군단과 남쪽 아래에 있는 이름없는 제단('하단')의 3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북에서 남으로 일직선상에 배열되어 있다.삼국사기를 비롯한 여러 기록에서 태백산은 신산(神山)으로 섬겨져 제천의식의 장소가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천왕단은 둘레 27.5m, 높이 3m, 좌우폭 7.76m, 전후폭 8.26m의 타원형으로, 녹니편마암의 자연석으로 쌓여져 있는데, 윗쪽은 원형이고 아래쪽은 사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군시대에 구을(丘乙)임금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이 제단은 상고시대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신라에서는 태백산을 삼산오악(三山五岳)의 하나인 북악이라고 하고 제사를 받들었다고 한다. 이는 고려와 조선을 거치는 동안에도 게속되었으며, 일제 때에는 독립군들이 천제를 올린 성스러운 제단이었다. 물론 지금도 매년 10월3일 개천절에 태백제를 개최하며 천제의 유풍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는데, 산꼭대기에 이같이 큰 제단이 있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하나 밖에 없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천왕단 제단 상단에는 '한배검'이라고 붉은 글씨로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한배검(韓倍儉) 은 '밝을 받아 하늘과 하나된 분'이라는 뜻의 '한밝임'의 이두식 표기라고 한다. 단군의 신호(神呼), 높혀 부른 말로서 우리 민족 최초의 조상이신 대황조 한배검이심을 새겨 놓은 것이다. 대종교에서 단군을 모신 장소로 성역화하는 과정에서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왕단은 태백의 정상에서 그 깊은 시간과 혹한 속에서도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한겨레의 정신적 위엄을 간직한채 당당히 우리를 맞이하였다.
우리 직원 일동은 천왕단에 올라 미리 준비해 가지고 간 제수를 진설한 뒤, 경건한 마음으로 회사의 사업번창과 임직원들의 가내화평을 기원하는 축문을 읽은 뒤에 술잔을 부어 올렸다. 눈밭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니 손과 발은 얼어붙는 것만 같으나 가슴속은 뜨거워 올랐다. 태백의 성령이 강림하셨는가?
천제단 바로 아래에는 '단종비각'이 있다. 1955년 망경사의 묵암이란 스님이 처음 세웠다고 하는데, 현재 비각의 편액은 탄허스님의 글씨이다. 비각에는 '조선국 태백산 단종대왕지비(朝鮮國 太白山 端宗大王之碑)'란 비석이 있다.
이곳을 지나쳐 내려와 망경사 아래쪽에 자리를 잡고 둘러 앉아 가지가지 간식과 댓병짜리 매실주을 나누어 먹으니 기분이 썩 상쾌하였다. 분위기잡이 곽전섭 부사장은 눈 속에서도 흥에 겨워 노래를 메들리로 마구 뽑아내고, 이 맛이 산행의 즐거움이 아니랴! 한 배를 탄 직원들 모두 천왕단에서 일심으로 정성을 모은 뒤끝이니 그 마음이 더욱 훈훈하였을 것이다.
당골매표소까지는 내리막 눈길이다. 한 잔 술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발걸음도 가볍게 어린애 처럼 눈밭을 내달리니 혼자하기에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당골까지 내려오니 천부경(天符經)을 새긴 큼직한 비석이 보인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로 시작하여 '일종무종일(一終無終日)'로 끝나는 81글자의 경전을 담고 있다. '하늘, 즉 우주는 시작됨이 없이 시작되고, 끝임이 없이 끝나니라'.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으로 말하자면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고나 할까? 이 세상은 나는 곳이 없으니 돌아가는 곳 또한 없으며, 가장 큰 것은 가장 작은 것과 같고 영원은 찰나와 같은 게 아닐까?
천부경은 원래 환인시절부터 있다가 훗날 환웅에게 전해진 삼부인 세 개 중의 하나인 거울(동경)에 새겨졌던 것인데, 환웅천황이 백두산 기슭에 신시를 개국한 다음 백두산 동쪽에 큰 비를 세우고 거기에 우리 민족의 옛글자인 가림다로 새겨 두었던 것을 통일신라시대 최치원이 백두산을 찾았다가 이 비석에 새겨진 글을 읽고 한자로 번역하여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비석 하단에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가 새겨져 있다. 고조선의 건국이념인 광명개천(光明開天)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 빛으로 하늘을 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 세상에 나아가 이치대로 다스린다-를 요약한 것인가 보다.
"떠남은 모두 옳다"고 했던가? 그리하여 "I travel, therefore I am."이다.
노산 이은상님의 "산악인의 선서"
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정열과 협동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할 뿐
언제나 절망도 포기도 없다
산악인은 대자연에 동화되어야 한다
아무런 속임도 꾸밈도 없이
다만, 자유, 평화, 사랑의 참세계를 향한
행진이 있을 뿐이다.
*태백산맥에서 흘러내린 준령들이 강건하다
*태백산의 정상 장군봉(1567m). 사진을 옳게 찍을 수 없을만치 번잡하다
*혹한을 이겨낸 주목은 변함없이 무심한 세월만을 노래하고 있다
*태백산 천제단의 중앙, 천왕단
*천왕단에서 정성을 모아 제를 올리다
*축문
*태백산 비석을 뒤덮고 있는 인파
*시비 - 태백산을 오르다(太白山登)
*천부경 비석(눈이 뒤덮고 있어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다)
*평상시의 천부경 비석 모습
*태백산 눈꽃 축제 행사장
*이곳에서도 싸이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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