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지난 한 해 우리 모두 아홉수를 무사히 지냈으니 앞으로 80세까지는 무탈장수할 것'이라며 덕담을 나눈 적이 있었다. 11월 30일 유명을 달리한 이지선 군의 상가에 갔을 때 임창수 사장이 '지선이가 우리 고교 동기들 가운데 벌써 마흔 몇번 째 친구'라고 하여 그곳에 모인 우리 모두를 숙연케 한 말이 새삼 떠 올랐다. 480명의 동기들 가운데 50명이라면 열 명 중 한 명은 벌써 우리곁을 떠났다는 말이 된다. 바로 윗 선배들과 비교해도 우리 동기가 좀 심한 편이긴 하지만, 착잡하기도 하고 우리가 벌써 그리 되었나 생각하면 끔찍한 마음마저 든다.
마음은 여전히 이십대이건만 어쩌다 나이만 이렇게 얹었는지 모르겠다. 나이를 하나씩 먹을수록 세월의 흐름은 참으로 빨라지는 것만 같다. 어릴적에는 생일까지 따져가면서 내가 형이니 네가 동생이니 하며 나이 많은게 마치 뭔 유세인 것 처럼 나이자랑을 하며 다투기도 했건만, 어느덧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이 때로는 부끄럽기도 하고, 또 나이를 먹는다는 게 웬지 자꾸만 아찔해지기까지 한다.
9라는 숫자는 완성을 의미한다. 9라는 숫자는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제일 큰 숫자고, 가장 마지막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떤 시작이 1이면 끝은 9이며, 따라서 9는 극(極)에 달했다고 한다.
아홉수에는 각별히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것은 9라는 숫자가 아슬아슬하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하고, 10이 되기전에 9라는게 마지막의 긴장감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서 그렇다고도 한다. 그러한 이유로 노총각 혹은 노처녀임에도 불구하고 아홉수에 걸리는 해에는 결혼을 미루고, 가장이 아홉수에 걸리면 이사를 삼가며, 회갑전 아홉수에는 생일을 꺼리기도 한다.
아홉수라는게 근거가 있는가 없는가에 대하여는 의견이 분분한데, 명리학에는 없는 이론이고 학술적 근거나 이론도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경사회의 특성상 갑작스러운 자극으로 동요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태평추구의 심리현상에서 유래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홉수를 일반적으로 보는 것이 맞느냐, 아니면 대운(大運)으로 보는 것이 맞느냐에 대하여는 아직 명확한 이론이 없다.
1)우선 일반적으로 아홉수는 해당 년도에 음력나이로 9자가 들어가는 시기를 아홉수로 본다. 여기서 아홉수의 분기점은 동짓날이 아니라 입춘일이 된다.
2) 반면에 대운방식에 의하면, 아홉수는 단순히 9세, 19세, 29세.....가 아니라, 사람마다 각각 주어진 사주의 특성에 따라 대운수(10년씩 돌아오는 운)라는 것이 정해져 있어서, 대운수가 1이되는 사람이 있고 2, 3, 4.......0이되는 사람도 있게 되서 사람마다 대운수가 다르게 된다. 여기서 9수에 해당이 되든, 8수에 해당이 되든간에 그 해당되는 수의 대운수를 가진 사람이 10년마다 대운이 바뀌게 되어 10년이 넘어갈 때마다 건강상 탈이 나거나 갑자기 일이 막히거나 하는 등 여러가지 안 좋은 일이 잠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해하기 쉽게 '대운 계산법'을 설명하면, 각각의 사주마다 대운의 시작 시기가 다르게 나오는데, 이 시기를 시작으로 해서 아홉번째 해를 계산한다. 예를 들어, 대운이 5대운이라고 하면 본인이 다섯살 때를 한 살로 가정하여, 그 때부터 아홉살이 되는 해, 그러니까 5살을 1로 보고 아홉번째인 13살이 아홉수가 된다. 그래서 13살, 23살, 33살, 43살.....이 아홉수가 된다는 이론이다. 여기서 아홉수는 그냥 쇠는 나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만 나이"로 보아야 한다.
(예)㉠ 1954년 2월 7일(음) 남자의 대운수는 8이며, 첫번째 대운의 시기는 1962년이며, 이때부터 따져서 아홉번째 되는 헤 즉, 1970년(17세), 1980년(27세), 1990년(37세), 2000년(47세), 2010년(57세), 2020년(67세).....<각각 쇠는 나이; 이하 같음>가 각각 아홉수가 된다.
㉡1957년 6월22일(음) 여자의 대운수는 6이며, 첫번째 대운의 시기는 1963년이고, 이때부터 따져서 아홉번째 되는 해 즉, 1971년(15세), 1981년(25세), 1991년(35세), 2001년(45세), 2011년(55세)......가 각각 아홉수가 된다.
㉢또한, 1963년 1월24일(음력) 여자의 대운수도 6이며, 첫번째 대운의 시기는 1969년이므로, 1977년(15세), 1987년(25세), 1997년(35세), 2007년(45세), 2017년(55세)....가 각각 아홉수가 된다.
㉣1989년 11월12일(양력) 남자의 경우 대운수는 1이며, 따라서 같은 방식으로 따져서 1998년(10세), 2008년(20세), 2018년(30세).....가 각각 아홉수가 된다.
누구는 나이가 들수록 세상사에 대범해진다고 하고, 웬만한 일에는 놀라거나 노여워 하는 법도 없어 "무위자연(無爲自然)', 감정의 기복이 없이 그저 주어진 대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된다고 하더구만, 나는 어찌 되는게 자꾸 소인배의 새가슴이 되어가는 것만 같다.
사소한 변화에도 가슴이 떨리고, 작은 일도 살피고 삼가게 되는가 하면, 눈물도 많아졌고 남 앞에서 눈에 띄게 얼굴이 후꾼달아 난처해 지는 일도 많아졌다. 섭섭한 일도 많아졌고, 세상에 나 혼자가 된듯한 외로움 비슷한 기분에 휩싸인다든지, 놀랍게도 꺼진 줄로만 알았던 20대 청춘의 애틋한 열정이 되살아나 잠 못이루는 밤도 늘어났으니 말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젊으셨을 때는 세상 거침이 전혀 없는 호랑이더니만, 우리 형제들을 모두 결혼시킨 다음 어느 때 부터인가는 무얼 그리 가리고 따지는 게 많으시던지 '이 분이 왜 이러 나약해지셨나' 하고 낯설게 생각되곤 했는데, 내가 영락없이 아버지를 닮아가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아홉수라!
여전히 해야 할 일은 많건만 주어진 시간이나 여건은 그리 만만치 않아 보이니 공연히 마음만 조급해 지기도 했을 것이고,
집안 가족, 형제들을 두루 살펴야 하는 나이, 처지가 되고 보니 나도 모르게 안하던 짓을 다 하게 되는가 보다.
한 해를 보내고 또 새 해를 앞에 두고 슬그머니 아홉수를 헤아려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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