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월례골프 회동 중에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천연히 알려준 자네의 CEO직 퇴임 소식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구먼.
다음 달 3월3일자로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고 물러나게 되었다고.
형식이야 용퇴라지만 회사를 설립하여 흑자구조로 만들기까지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이 앞만 바라보고 뛰어 온 자네가 그 자리에서 물러난다니 도저히 믿기지를 않는구먼.
자네의 아쉬움이야 말할 나위없이 크겠지만, 자네를 곁에서 쭈욱 지켜본 나로서는 순간적으로 울화마저 치미는 걸 억누를 수가 없었다네. 내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어젯밤엔 꿈까지 꿨지 뭔가? 그래도 꿈속에서 '더 험한 꼴 보이지 않고 명예를 지킬 수 있으니 그만하면 족하지 않는가'라며 오히려 나를 달래던 자네의 의연한 모습에 할 말을 잃은채 잠에서 깨어났다네.
오늘 내내 마음이 울적하여 산보를 나갔다가 돌아왔네. 자네보다 일찍이 이런 경험을 하며 주위의 격려로 내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몇 자 적어 보니 모쪼록 힘내시게나.
인생을 살면서 마음을 비우고 지금 내가 가진 것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다네.
특히 오랫동안 키워온 조직의 대표직에서 물러나거나 큰 공을 세우고 그 공을 남에게 양보해야 할 때면 누구든 아쉽고 서운하기 마련이지.
그래서 공을 이루는 것도 어렵지만 그 공을 내려놓은 것이 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하지 않던가?
'내가 낳았어도 소유하려 하지 마라(生而不有)!', '공을 이뤘으면 그 공에 머물리 마라(功成弗居)!' 등 도덕경에는 내려놓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내용이 유독 많다네. 내가 지금 잡고 있는 것을 내려 놓으면 모든 것을 잃을 것 같지만 결국에는 더 큰 성공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런 모양이야.
송나라 야부도천(冶父道川) 선사의 게송에 이르기를 '득수반지미족기(得樹攀枝未足奇),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手丈父兒).'
"나뭇가지를 잡고 있는 것이 족히 기이한 일이 아니다! 벼랑끝에서 잡은 손을 놓을 수 있어야 비로소 진정 장부다!"
벼랑끝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것도 힘들지만, 때로는 그 나뭇가지를 잡은 손을 놓는 것이 장부의 중요한 결단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지 않는가?
그래, "현애살수(懸崖撒手)야!"
벼랑(崖)에 매달려(懸) 잡고 있는 손(手)을 놓는다(撒)!
천 길 낭떠러지에서 나뭇가지를 잡은 손을 놓는 것을 상상해 보게나. 아찔하지? 손을 놓는 순간 그 결과는 너무나 분명할 것이기 때문에.
친구여!
내 모든 열정을 바쳐 근무한 회사에서 물러나게 될 때 그 아쉬움과 심난함이 얼마나 큰지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모를꺼야.
그러나 내가 집착하고 지키려는 것을 내려놓는 순간 그로써 내 인생은 끝장나는 게 절대로 아니며,
또한 내가 살았던 직장생활의 공간이 세상의 전부도 아니고,
아니 그 보다 훨씬 더 넓은 세상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뭐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껄세.
올해는 청마해, 갑오년이지. 우리가 벌써 이리 길게 살아왔다네.
지금까지 잘 살아온 자네이기에 앞으로 더 좋고 편안한 말년 운수가 펼쳐지리라 믿네.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네.
모쪼록 더욱 건강하고,
그리고 진정한 마음의 자유와 나만의 평온을 만끽하시게나.
자, 우리의 우정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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