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 형은 나의 고등학교 1년 선배이며, 같은 대학에서 수학한 동문이다. 군에서 제대하여 복학한 뒤로 주로 학교 중앙도서관에서 함께 공부를 해서 특별한 우의를 나누었다고 하겠다. 승철형은 일찌기 취업으로 진로를 정하고 영어공부를 비롯하여 취업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었고, 나는 무슨시험 준비를 한 번 해 볼까 하던 때였다. 군대에서의 3년간의 공백은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컸다. 전공서적의 용어마저 생경하여 국어사전을 뒤적이면서 적응해 나가던 때였는데, 30년 이상이 훌쩍 지난 지금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유독 겨울철 연탄난로위에 얹어 도시락을 데워먹던 기억만 생생한지 모를 일이다. 아마도 그 일 말고는 딱히 잔재미라 할 것도 별반 없던 어둡고 막막한 시절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루에 도시락을 2개씩 싸 갖고 와서 점심, 저녁을 그런 식으로 때웠는데, 도서관 열람실 옆 휴게실에 둘러 앉아 공부 진도며, 개인적 고뇌 등을 나누던 그 시간들이 꿈속의 모습마냥 아련하다. 도서관 문을 닫을 즈음이 되어 어두운 대성로 길을 걸어 내려 오면서 가졌던 가슴 뿌듯한 희열은 지금도 나의 식은 가슴을 마냥 뛰게 만든다. 초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그 사이에 폭설로 변했나 보다. 대성로의 가로수들이 동양화 속의 원경처럼 꼭 필요한 고결한 몇 가닥의 선으로 단순화되면서 아득하고도 부드럽게 흐려 보였다. 어린 나무 가지들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간간이 잔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뚝뚝 비명처럼 들렸다. 나무가지에 눈 꽃이 만개해서 황홀했다. 선경이었다. 눈 덮힌 거리를 미끄럼치면서 달려 내려오며 "얏호!"하고 환호를 지르면 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승철형은 부친의 두꺼운 회색의 모직 코트를 입고 다녔는데 그게 왜 그리도 멋있어 보였는지 모른다. 구닥다리 패션일 망정 남의 시선일랑 아랑곳 할 필요 없던 순수한 시절이었다.
후배를 늘 따뜻하게 감싸주던 형은 자기 학과 여조교와 결혼을 하였는데 그 뒤 간혹 소식만 전해 듣다가 최근에 들어 문득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여 김영덕사장을 통해 만나 회포를 푼 적이 있다. 형은 현재 (주)미디어 윌의 대표이사로 여전히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변함없는 모습을 보니 반가왔다. 아들과 딸을 하나씩 두었는데 모두 잘 가르쳐서 반듯하게 컸다고 한다. 6월25일(토) 11시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아들이 결혼식을 한다고 전갈이 와서 예식에 참석하였다. 이 날은 보성 63산악회의 월례 등산모임이 있는 날이었지만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주고 싶었다.
지역적으로 산발적인 호우가 쏟아지는 거리를 차를 몰아 도착하니 63회 친구들도 여럿 보였다. 안재호 원장, 우광식 박사, 조정빈 상무, 김영덕 사장 등이다. 조상무를 제외하고 나머지 친구들은 부부동반으로 참석하였다. 우박사 말로는 62회의 승철형 과 서울대 경영대 곽수근 교수와 한 달에 한 번씩 부부동반 모임을 갖고 있다고 한다. 잠시 외로움 같은 감정이 얼핏 스치고 지나갔다. "어, 그런가?"하면서 그들의 관계를 이리저리 뜯어 맞추어 보는 어리석은 마음이다. 나의 우습고도 가소로운 본디의 모습이다.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이러고 있으니 철없는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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