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멀미!"
사실 글멀미란 말은 지나치게 자기도취적인 상태에서 쓴 글을 대할 때 느끼게 되는 독자의 생경감이랄까 또는 심한 경우 비위가 뒤틀리기까지 하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마치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 갈 때라든지 배를 타고 일렁이는 바다를 나갈 때 느끼는 어지럼증과 같은 기분 말이다.
누군가 이런 비유를 했다.
어느 사람이 "경주의 고분군에 가면 가끔 신라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라고 할 때
또는 "저는 가끔 우주의 저 높은 차원에서 다른 존재들과 교감하고 있어요" 와 같은 말에는 많이 밀리게 된다고.
"나무들이 말을 걸어 와요",
"아니, 뭐라고요?",
"아프다고들 해요"
이쯤되면 예술과 반쯤 미치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과의 경계가 아주 모호해 진다.
이런 글의 특징은 첫째, 검증이 불가능 하다는 것, 둘째, 그렇지만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늘 어지러워요. 믿지 않으시겠지만 지구가 자전하는 것이 느껴져요." 글쓴이가 이런 식으로 글을 지어냈다면 중증일까? '어쩌겠는가? 그렇게 느껴진 다고 하는데....' 글멀미 현상이야 고스란히 독자의 몫이겠지만.
지난 11월2일이후 절필을 한 지 벌써 4개월이다. 그 동안 단 한 줄의 글도 마무리 지을 수 없는 심각한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는 글을 씀에 있어서 이런 믿음을 갖고 있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담기 위하여는 마음과 글이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가령, 여행기를 쓴다면 여행중에 가졌던 흥분, 서글픔, 분노 등과 같은 감정이 글을 쓰는 그 순간에 고스란이, 철저하게 동기화되지 않고서는 글이 아니라 문자의 나열이 되고 말듯이 말이다. 그런데 왠일인지 이 동기화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이었다. 책상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는 순간 감정이 너무 앞서 간다든지, 거꾸로 감정이 좇아오지 못한다든지. 이게 무려 4개월씩이나 지속되다니. 난 이런 상태를 "글씀의 멀미현상"이라고 하고 싶다. 스리나가르를 지나 다람살라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이 아직 남아 있는데 마음은 자꾸 조급해지고 불안하기만 하다.
이런 병리 현상의 시작이 공교롭게도 Daum에서 이 블로그를 "요즘 뜨는 블로그"로 선정하고 부터였던 것 같다. 내 글을 남들이 들여다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글에 잔뜩 힘이 들어가게 되었고, 글을 위한 글이 되고 말면서 내 글속에 진정성이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더 이상 이런 거짓 감정을 꾸며내느니 차라리 절필을 하는게 옳은 일일 것이다.
나는 이참에 이 블로그를 아예 폐쇄해 버려야 할까 보다.
가슴속이 아리도록 심란하기만 한 마음을 다소나마 순화하는데 최정재의 시를 읽는 것만한 것이 없는듯 하다.
나는 최시인의 흉내를 내어 서늘한 내 가슴을 잠시 어루만져 본다.
"꽃집 앞을 지나다 그녀가 좋아하는 꽃이 보이면
'당신이 안을 수 있을 만큼 맘껏 안아봐'하고
그 꽃을 가슴 가득히 안겨 주었어야 했을걸...
함께 영화를 보다가 사랑하는 남녀가 헤어지는 장면이 나왔을 때
말없이 손을 잡아주며 이런 확신을 주었어야 하는데...
- 우리 더도 말고
바다 한 가운데다 동전 떨어뜨려
다시 찾을 때까지만 서로 사랑하자고... -
어쩌다 심심하다, 보고싶다 말하면
후질그레한 옷차림이면 어때? 덥수룩한 머리면 어때?
택시라도 잡아타고 달려가
반가운 웃음을 보여주었어야 하는걸...
갑자기 바다 내음이 그립다고 말하면
근처 횟집으로 달려가
빈 병에 바닷물이라도 하나 가득 담아 주었어야 했는데...
지독한 감기에 걸려 아파하고 있을 때
약대신 진한 키스를 해 준 후
같이 감기에 걸려 그 고통을 함께 나누었을걸...
길을 걷다가 갑자기 소낙비가 내리면
내 웃옷을 벗어 그대의 머리에 씌워주었더라면...
외롭고 힘들어 보일 때
조용히 근처 카페로 불러내 곁에서
그 넋두리를 다 들어주겠노라고 했어야 하는데...
난 당신이 머그잔을 두손에 감싸 쥐고
반쯤 감긴듯한 눈으로
따스한 커피의 향내를 음미하는 그 모습을
그저 미소를 머금은채
그윽히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을텐데...
가까왔던 주위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아 괴로워할 때
그 사랑같은 눈물을 닦아주며
'그래도 난 영원히 당신의 편이야'라고
작은 어깨를 가만히 감싸안아 주었을걸...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
그대가 몹시 그리웠던 날
편지지에
당신의 이름을 무수히 채워
문자대신 건내주며
당신의 어이없어 해 하는
그 빛나는 미소를 바보같이 바라보았을걸...
알량한 자존심일랑 벗어 던지고
솜사탕을 함께 뜯어 먹으며
깔깔대고 웃기도 하면서
아이스크림 묻은 입술을 굳이 닦지 않아도 좋은
그런 데이트를
단 하루라도 해 보았더라면..."
그 향기....
그 음성...
그 느낌...
*스리나가르 달호수의 저녁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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