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인도로 가는 길(기행13) - 스리나가르 ; 달(Dahl)호숫가의 추억

양현재 사색 2012. 2. 26. 19:29

이대로는 안 될 듯 싶다. 더 이상 내 영혼에 새생명을 불어 넣어 줄 자신이 없다. 이제 그만 이 블로그를 폐쇄해야 하는 이유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마음만 급하다. 어디서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게 또 허둥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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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350년전 무굴제국의 황제 제항기르는 스리나가르를 이렇게 말했다지. "지상에 낙원이 있다면 바로 이곳 스리나가르!"라고.

까르길을 떠나 그닥 멀지 않은 길을 헐떡이며 달려온 우리의 애마, 찝차는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채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렇지 않더라도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다. 사방을 에워싼 호수가 우리를 가로막고 서있기 때문이었다. 달(Dahl)호수다. 참으로 예쁘고 평화로운 풍광이다. 호숫가에 자리잡은 낮으막한 집들과 저 높이 설산이 잘 어우러져 정겹기만 하다.

 

오늘의 숙소는 이 호수에 떠 있는 수상호텔, House Boat다. 황야를 달려 온 심신의 구석구석이 벌써부터 꼼지락거리며 들뜨기 시작한다. 이런 설렘이 아까워서라도 그리 늦지 않은 시각에 도착한게 여간 고마운게 아니다.

 

House Boat는 말 그대로 물위에 떠 있는 집. 영국 식민지 시절에 이곳 일대는 허울뿐이기는 하지만 독립국이었고, 당시의 마하라자(왕)는 외국인이 부동산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스리나가르의 풍경에 매료된 영국인들은 마하라자의 법망을 피해 배를 건조한 후에 받침대를 수면 아래 깊숙히 고정시켰다. 물위에 있지만 흔들리지 않으니 배멀미를 걱정할 필요가 없고, 배를 집처럼 꾸미니 법을 어기지 않아도 되었다고. 영국인다운 발상이다. 이곳의 House Boat는 이렇게 영국 호사가들을 위해 세워졌고, 이들이 떠나간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영국인들의 소유에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숙소로 제공된다는 점이지만.

 

우리 일행은 제각기 4명씩 조(組)를 이루어 House Boat를 배정받았다.

House Boat에 입실하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야 했다. 시카라(Shikara)라고 달호수의 수상택시다. 이탈리아 베니스(Venice)의 곤돌라(gondola)라고 보면 될 듯 싶다. 다만, 베니스의 곤돌라 사공들이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웬만한 가수 뺨치리 만치 칸초나(canzona)를 멋들어지게 부르는 멋쟁이라면 이곳 달호수의 사공들은 하나같이 늙고 궁핍한 모습들이어서 그들의 인생에 드리워졌을 깊은 고뇌들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이 아파왔다.  

 

우리 조원 4명이 탄 시카라의 사공은 70세는 족히 넘어 보이는 알리라는 분이었다. 우리가 뭔가를 소리쳐 열심히 물어 보았지만 의사소통이 전혀 안된다. 근처에 있던 시카라의 사공이 "deaf, deaf"라며 일러준다. 알리가 못알아 듣는다는 말이다. 아차! 싶다. 스스로 무슨 말인가를 열심히 하는 걸로 보아서는 원래부터 귀머거리는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자라면서 청력을 잃은 듯 하다. 알리의 나이로 보아서는 설사 우리가 영어로 말하는 것을 알아듣는다 해도 그 뜻을 이해하리라 기대하는 거 자체가 무리인 듯 싶었다.

불과 15분의 거리를 노지어 오는데도 알리 할아버지의 숨소리는 갈수록 거칠어 지기만 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아버지의 표정만은 참 순박해 보였다. 시카라 이름이 'Good Heaven"이다. 좋은 천국이라! 멋지다. 이 분께 좋은 천국에 이르는  날이 꼭 오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내일 새벽 호수 북쪽에서 열리는 수산시장(floating market)에 갈 교통편을 알리 할아버지의 시카라로 예약하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을 전했다. 

 

우리의 숙소는 London House. 두 채의 House Boat로 구성되어 있다. 외관은 이슬람 문양이지만 내부의 가구들은 빅토리아풍이어서 마치 영국의 어느 캐슬(castle)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여행길에 갖는 최고의 호사다.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더 어두워 지기 전에 저녁식사를 서둘러야 겠다.

 

각각의 House Boat에는 관리인(?)이 딸려 있어 투숙객들과 함께 기거하며 간단한 조리며, 청소, 심부름 등을 도와 주는 식이었다. 입구의 거실바닥에 담요를 덮고 자는 게 안되 보이면서도 폐쇄된 공간 내에서 함께 기거해야 한다는 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식민지 시대의 풍습대로 라면 관리인이라기 보다는 하인으로 불렸을 듯 싶다. 그러나 어떠랴? 오늘 이곳에 우리만의 낙원을 가꾸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오늘 저녁 요리는 우리 조원 일행의 제안에 따라 닭백숙으로 정했다. 그간 먼지속에서 칼칼해진 목을 다스리는데 이만한 게 없을 것 같아서 란다. 제대로 된 살림집에 터를 잡았으니 그동안 호텔에서 대충 간식으로 때우던 식사를 이럴 때 이런 요리도 욕심내어 봄직했을까?

어찌 되었건 닭백숙에 필요한 식재료의 구입을 관리인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려 장을 보아 돌아온 관리인의 손에 들려 온 것은 요청한 품목들과 사뭇 달라 우리를 몹시 난감하게 했다. 우선  생닭이 통닭이 아니라 토막질이 된 것이었고, 감자대신 양파.

더우기 House Boat안에서는 차를 끓이는 것을 제외하고 가스사용은 금지란다. 그러면 진작 말을 할 것이지!!!! 돈은 돈대로 챙겨받고 이제 와서 조리금지라니!!!

 

실랑이끝에 House Boat 뒤 뜰에 자리잡은 주인집 주방에서 조리를 하기로 했다. 지금 이 시각에는 주인집 식구들이 이슬람사원에 기도하러 나갔으니 얼른 조리를 마치면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가스사용료는 지불하는 조건으로. 

또한, 요즘의 기간이 이슬람 기도기간이라서 자신은 고기를 만질 수 없으니 우리들 보러 직접 조리를 하란다.

우여곡절끝에 짧은 시간내에 서둘러 조리를 했는데 이게 닭백숙인지 닭이 헤엄치고 지나간 곰탕인지 모르겠다. 닭도 질기기도 하지 잘 씹히지도 않는다. 후추에 소금에 뿌려댔지만 그동안 조심스러이 다스려 온 뱃속이 다시 불편해 온다. 

저녁식사가 완전히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배낭 여행길에 기껏 닭백숙을 생각해 내다니 대단한 한국인들이 아닌가? 이런 해프닝도 훗날 좋은 추억거리가 될지 모르지 하며 위안을 삼아본다.    

 

벌써 주위는 어둠이 짙게 내렸다. 오로지 House Boat의 불빛만 호수면에 고요히 흔들릴 뿐 달호수에는 태고의 적막함만이 감돈다.  

밤공기가 제법 차갑지만 이 밤 쉽게 잠이 들지 못할 것 같다.

이웃 동무를  밖으로 불러내어 나무 의자에 앉아 어둠속의 호수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이 순간 대화는 단지 불필요한 소음일 뿐, 그저 말없이 무릎위에 담요를 덮어준다.

 

인연이란 이런 것일까?

필연이었으면 좋겠는데....

결코 우연일 수 없는

두 사람의 간절한 바람으로 시작된 그런 것 말이다.

 

먼 훗날에도

우리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기를 소망하며....

 

 

 

 

 

 

 

 *Good Heaven Deluxe Shikara가 우리의 숙소인 House Boat (London House)에 정박해 있다. 

 

 *숙소에서 바라 본 달호수의 전경

 

 *달호수의 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