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7월1일, 송광사 - 굴목이재 - 선암사 순례
육당 최남선은 1925년 3월 하순부터 50여일간 지리산을 중심으로 남도(南道)를 두루 돌아본 뒤 "심춘순례(尋春巡禮)"라는 기행문집을 남겼다. 이 문집은 근대수필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면서 기행문학의 백미로 손꼽히고 있다.
육당은 조계산 송광사와 굴목재 너머 선암사를 탐방하고, 그 소감을 이 "심춘순례"에 실린 33편의 기행문에 실은 바 있다.
여행사 '블루라이프'가 이 코스를 당일 여행상품으로 준비했다는 기사를 매일경제신문에서 읽고 서둘러 예약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당일 예상인원의 절반정도 밖에 차질 않아 버스안의 좌석은 여유가 있었다. 여행사로서는 결코 남는 장사가 아니었지만 신청자들의 기대에 반하지 않기 위해 여행을 강행한 블루라이프의 고민과 결단이 참으로 고마웠다.
㉮조계산 송광사
송광사는 전남 순천시 송광면에 있는 조계산 자락에 새둥지처럼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는 우리나라 선종을 이끄는 중심사찰이다. 보조국사 등 16국사를 비롯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하여 삼보사찰 가운데서도 승보종찰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져 있다.
1969년 조계총림이 발족하면서 방장 구산스님께서는 승보종찰다운 도량을 가꾸어야 된다는 생각에 사부대중이 뜻을 함께하여 1983년부터 1990년까지 8년여에 걸쳐 대웅전을 비롯하여 30여동의 건물을 새로 짓고 중수하여 도량의 모습을 일신, 승보종찰의 위용을 갖추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송광사 입구에서 왼쪽으로 벗어나면 불일암가는 길이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법정스님이 기거하시던 암자로 그 분의 청정한 자취를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통로인 삼청교는 일명 '능허교'라고도 하는데, 19개의 네모난 돌로 무지개 모양을 만든 후에 양 옆에 잘 다듬은 돌을 쌓아올려 무게를 지탱하도록하였다. 능허교와 그 위에 지어진 우화각,그리고 무지개 다리밑의 계곡물이 군더더기 한 점 없이 썩 잘 어우려져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한다.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方丈)이신 보성 큰스님은 나의 장인어른, 박윤만(朴允萬)님의 속가의 죽마고우이시다. 장인께서는 애석하게도 열두 해 전에 작고하셨다. 이 분의 생전에 송광사로 방장 큰스님을 찾아갔을 때 "아이구, 이게 누고? 윤마이 아이가?!"하며 뛰어나와 반기셨던 일이 엊그제 일만 같아 장인어른에 대한 그림움이 새삼스럽게 밀려왔다.
㉯송광사 굴목이재(큰 굴목이재), 선암 굴목이재(작은 굴목이재)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넘어가는 조계산(해발 887m) 8부 능선에 위치한 고갯길은 굴목이재, 또는 굴맥이재, 굴목재라 불리는데, 활엽수와 침엽수가 잘 어우러져 숨길은 가빠와도 산행길이 전혀 힘드는 줄 몰랐다.
굴목이재 정상에서 뒤쫓아 올라 온 두 분의 젊은 스님들에게 배낭에 담아온 음료수 한 병을 권했다. 수행중에 포행(布行)삼아 도반끼리 산을 오른 모양이다. 두 분의 모습이 한없이 평화롭고 얼굴빛이 영롱하다. "성불하세요!" 두 손 모아 축원을 해드렸다. 합장으로 답례하고 다시 길을 떠나는 두 분의 뒷모습이 가볍고 씩씩하다.
중간 지점에 위치한 '조계산 보리밥집'(전화번호 061-754-3756)에서 야채 비빔밥과 막걸리 한사발로 더위를 식히니 몸은 혼자지만 마음은 썩 즐거웠다.
㉰선암사
굴목이재를 지나 선암사 산문에 이르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인다. 파스텔톤의 연둣빛으로 물든 산빛이 차라리 꽃보다 아름답다.
1989년말에 이곳을 방문한지 23년만에 다시 찾게 된 것이다. 당시 첫째 처남이신 성호스님이 여기서 멀지 않은 낙안면에 있는 금둔사에서 수행중이었는데, 이 분의 안내로 선암사를 둘러보았던 기억이 난다. 국영기업체의 간부로 근무하던 큰 처남은 처자식, 부모형제를 남겨두고 어느날 홀연히 출가를 하고 말았다. 온 집안이 난리가 난 것은 물론이고. 어찌어찌해서 찾아가면 그 뒤 또 종적을 감추기를 몇 차례 거듭하더니 지금은 아예 어디서 어찌 지내는지 알 길이 전혀 없는 상태다. 속세와의 인연을 그리도 매정히 끊을 수 있다는 건 어쩌면 구도자가 우리네 속인과 확연히 다르고 달라야 하는 모진점인지도 모르겠다. 어디에 계시건 부처님의 자비하신 가피가 이 분과 늘 함께 하기를 빌어본다.
선암사는 우리나라 불교 27개 종단 중 조계종에 이어 두번째로 큰 태고종의 본찰이다.
유흥준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선암사의 가람배치는 마스터 플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형에 따라 증축되어 건물들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내가 이 절을 다 보았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단다. 건물을 돌아 뒤쪽으로 가면 아까 본 건물이 다른 모습으로 보이고, 또 한쪽으로 옮기면 새 건물이 드러나 그 넓이와 깊이를 알 수 없단다. 그래서 "깊은 절"이라고.
이렇듯 다양함이 정겹게 드러나면서,또한 곳곳에 돌담을 둘러 공간을 감싸고 있기 때문에 마치 연륜있는 양반마을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 곳이라고 한다.
만세루 뒷편으로 위쪽에 장중한 예서체로 육조고사(六祖古寺)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다. 달마대사가 살았던 육조시대부터 오래된 절이라는 뜻인데, 서포 김만중의 부친으로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김익겸의 글씨다.
우리나라 산사 진입로 중에서 가장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승선교(昇仙橋),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된 뒷간, 선암사에 들어서면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문화재인 승탑밭........ 그 다양한 아름다움을 어찌 내 필력으로 이루 다 옮길 수 있으랴?
그런 면에서 보면 선암사의 아름다움은 이 절의 영원한 팬인 유흥준 교수의 유려한 필치로 지고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피어났다고 하겠다.
"선암사의 공간구조에서 무우전(無憂殿)은 가장 좋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무우전 툇마루에서 무덤덤한 산등성이를 느리게 뻗어나가는 조계산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듬직하고 차분한 맛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산문에 들었습니다. 봄날 기지개를 켜며 깨어나는 산빛 쇠락한 풍경, 언제 가 보아도 눈에 띄게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주눅이 들게 하지도 않는 선암사는 한 폭 담담한 수묵화 같아서 그 때마다 가만히 고개 숙여 집니다."
선암사는 나의 보성중학교 은사이신 조종현 선생님과 그 분의 아들이며 나의 보성고 선배인 조정래 작가와 인연을 갖고 있는 곳이다. 시조시인인 조종현 선생님은 한 때 이 선암사의 스님이셨고,, 조정래 선배는 바로 이 절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나는 정해진 일정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한 채 절을 떠나면서 종무소에 들러 벗을 위해 기와불사를 올렸다. 이 벗이 갖고 있는 고뇌가 씻기우길, 그리고 또 우리의 아름다운 인연이 영원하길 빌면서.
8) 10월 13일, 공주 장군산 영평사 구절초 꽃 축제
계절이 너무 좋다 보니 어쩌다가 구절초 꽃 축제까지 가게 되었다.
구절초는 국화과의 다년초로 재배국화의 전신이라고 하며, 대개 들국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산지에서 자라는 야생화인데 근래에는 재배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어디서든지 쉽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가을 꽃이다. 구절초는 9월9일이면 줄기가 아홉마디 정도가 되는데, 이 때가 약초가되는 시점이라고 하여 구절초라고 부른다고 한다. 구절초는 오랜 세월 한방에서 약초로 사용되어 왔는데, 그 성질이 따뜻하여 설사를 자주하는 사람, 손발이 찬 여성, 치통이 있는 사람에게 좋을 뿐 아니라, 콜레스테롤 조정기능과 각종 혈관질병예방에도 효능이 있다고 전해진다.
영평사는 이 지역 곳곳 들판에 자생하는 구절초를 특화해서 사찰 주변 야산에 집중적으로 재배했다고 한다. 내가 이곳을 찾은 때는 마침 구절초가 한창인 철이어서 꽃 축제가 열리고 있는 기간이었다. 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 있는 듯 온 야산을 뒤덮은 구절초는 군데군데 푸른 소나무들과 어우러져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영평사 법당 앞마당에서는 대전에서 온 음악가들이 산사 음악회를 열어 축제의 분위기를 한껏 띄우고 있었다. 구절초를 우려낸 향기로운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세상 편안한 자세로 마냥 세월을 낚다.
들국화!!!
화려한 듯 소박하고,
그러나
그 눈부심으로도 결코 오만하지도
촌스럽지도 않으면서
그대로 단아한 너의 모습은
단정한 옷 매무새에
수줍게 미소를 머금은
속 깊은 나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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