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10월14일, 인천 옹진군 영흥면 영흥도(瑩興島) - 가족여행
최근에 강원도에서 이곳 영흥도로 근무지를 옮긴 넷째 처남을 방문한다는 핑계삼아 셋째 처남, 막내처남 부부와 함께 길을 나섰다.
아울러 막내처남인 박완규 교수가 정교수 발령을 받은 것을 축하하는 자리도 자연스레 만들어지게 되었다.
영흥도는 고려가 망하자 고려 왕족의 후예인 왕씨가 영흥도에 피신, 정착하면서 살고 있는 동안에 영흥도에서 제일 높은 산, 국사봉(해발 123m)에 올라와 나라를 생각하며 한양을 향하여 고려국이 다시 흥할 것을 신령께 기원한 곳이라 하여 영흥도라 불리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하여 지고 있다.
2001년 12월에 선재도와 영흥도간에 연육교인 영흥대교가 완공됨으로써 인천 - 대부도 - 선재도 - 영흥도를 잇는 새로운 도로지도가 만들어 지게 되었다. 영흥대교는 국내 기술진에 의해 최초로 건설된 사장교(탑에서 비스듬히 친 케이블로 거더를 단 다리)로서 2004년 1, 2호기의 영흥화력발전소 건설에 맞추어 건설된 다리다.
영흥도는 인천 앞바다에서 백령도 다음으로 큰 섬으로, 다리가 놓여지기 전까지는 뱃길로 1시간이나 떨어진 외로운 섬이었다. 이 섬의 명소로는 십리포 해수욕장이 있는데, 진두 선착장에서 10리 가량 떨어져 있어 '십리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왕모래와 조개껍대기로 이루어진 고운 백사장과 날카로운 바위, 이리저리 비틀어지며 올라간 서어나무숲이 깊은 인상을 주는 비교적 한가로운 곳이다.
섬을 둘러보고 난 뒤에 넷째 처남의 관사에 들렀다. 다리로 연결되어 더이상 외딴 섬은 아니라 하지만 가족들과 떨어져 퇴근 후에 어두운 방에 홀로 들어설 처남의 처지를 생각하니 어쩐지 가슴이 아파왔다.
5) 10월21일, 운길산 수종사
운길산이 수도권 시민의 사랑을 각별히 받고 있는 것은 정상의 동쪽 능선에 자리잡은 수종사 때문일 것이다.
수종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에 자리잡은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다. 이 절은 조선 제7대 임금인 세조와 관련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세조가 신병치료차 금강산을 유람하고 돌아올 때 밤이 들어 양수리에서 야경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운길산 어디선가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와 다음날 숲속을 조사해 보니 천년고찰의 폐허 바위위에는 18나한상이 줄지어 앉아있고, 그 바위틈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내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감동한 세조는 지금의 자리에 절을 복원하고 수종사(水鍾寺)라 부르게 하였다."
작년 이 맘때 벗과 함께 이곳을 찾았을 때 그 눈부신 단풍에 온통 마음을 빼았겼던 추억을 억누를 수 없어 홀로 이 곳을 다시 찾게 된 것이었다. 산이랑 그 안의 사찰은 모두 작년 그대로이건만 오늘 벗은 곁에 없고, 단풍도 그 때만 못하였더라.
점심공양시간에 맞춰 사찰을 찾은 등산객들을 위하여 보살이 시루떡을 가득 담은 함지박을 들고 나와 삼정헌(三鼎軒) 툇마루에 올려 놓았다. 절 툇마루 벽에 기대 앉아 따뜻한 시루떡으로 점심요기를 맛나게 하였다. 빨간 단풍잎을 머금은 법당 추녀 끝을 따라 파란 하늘을 망연히 응시하니 법당안의 부처님을 닮은 얼굴 하나가 빙긋이 떠올라 슬그머니 눈을 감아 버렸다.
6) 10월18일, 30일 - 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골뫼골 마을(명품마을)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 10월. 하루하루 시간의 흐름이 못내 아쉬워 괜스레 마음이 초조해지는 시절이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딱히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길을 떠나 우연히 찾아든 곳. 충주호반의 36번 도로는 산맥 깊숙히 들어온 호수의 진초록 물빛을 만날 수 있는 한적한 일품 드라이브 코스였다.
월악선착장 조금 못미친 곳에 자리한 '월악도토리 목밥집'에서 이 집의 자랑거리인 묵밥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웠다. 이 음식점 2층 옥상에 마련된 전망대는 충주호와 월악산을 한꺼번에 바라볼 수 있는 명소다. 이곳 전망대에서 바라 본 월악산 정상은 여자가 머리를 풀어 헤치고 하늘을 향해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예전부터 음기(陰氣)가 서린 산이라고 여겨졌다고 한다. 이 산을 달래기 위해 송계 덕주사에 남근석(男根石) 3개를 세워 놓았는데, 일제시대 때 윗부분이 잘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친구와 함께 음식점 아래 비탈을 따라 얼마간 내려가니 충주호와 맞대어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충주호 유람선이 물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면서 희롱이라도 하듯이 물살을 일으켜 우리들 앞으로 밀어온다. 아련한 그리움같은 감정이 일렁이다.
점심을 마치고 막연히 길을 더듬어 산골로 접어든 곳이 골뫼골 마을이었다. 이곳은 송계계곡으로 연결되는 실개천인 동산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사자빈신사지 석탑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계곡을 따라 이어진 산길로 8km의 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딴 세상에 온 듯 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2011년 12월29일 '국립공원 명품만들기 사업'의 대상지로 선정되어, 두부만들기 체험관, 황토집, 탐방로, 인근 송계계곡의 수생식물 관찰, 산나물 채취, 야영, 숲관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10가구 정도의 마을이지만 사람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주위는 지독하도록 고요하기만 하다. 체험관앞마당의 평상에 큰 대(大)자로 누워 푸르른 가을 하늘을 눈이 부시도록 바라볼 뿐, 마음을 그냥 놓아버린다. "아! 이 순간이 너무 너무 행복하다. 아, 어쩌란 말인가?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마을 아래를 내려다 보는데 사람 머리가 보였다. 그곳으로 부지런히 달려가니 할머니 한 분이 막 밭일을 나가시는 길이었다. 현재 이 동네에는 이 분과 당뇨로 앞을 잘 보지 못하는 다른 할머니 한 분만이 살고 계시단다. 할머니를 졸라 함께 팥추수를 도와 드리러 나섰다. 낫질이 처음이라는 친구는 얼마나 씩씩하고 솜씨있게 핕밭을 누비던지 할머니께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웬 낯선 사람들이 들이닥쳐 밭일을 도와주겠다는 게 처음에는 적지않이 미심쩍으셨겠지만, 일을 마친 뒤 인사를 드리고 떠날 때는 호박, 감자 등 뭐라도 싸주시겠다고 부엌과 마당을 분주히 왔다갔다 하시며 우리의 발길을 잡아 두셨다.
할머니는 이곳에 시집온 지 60년이 넘었단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는 산과 골이 너무 깊어 눈물로 시절을 보냈는데, 밭작물을 심어 그것들이 쑥쑥 자라는 걸 지켜보는 재미에 푹 빠져 그만 그 긴 세월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여태껏 살아왔단다.
몇 년 전에 넘어져서 다리를 다쳤는데 그 후유증으로 낡은 유모차에 몸을 의지하며 그 연세엔 적지 않은 밭농사를 혼자서 짓고 계신 것이었다.
돌아 나오는 길에 할머니께서 밭에 깨를 베어 밭이랑에 군데군데 세워놓은 걸 보고 친구는 '우리 저 깨털러 다시 한번 오자'며 나를 잡아끌었다. 나는 원래 밭일과 같은 몸으로 하는 일에는 전혀 재주가 없어서 도움이 되질 않을 터이지만 친구의 착한 마음에 끌려 '그래 그래, 그렇게 하자'고 내가 더 신이나서 승낙을 하였다. 그리고 열 이틀 뒤에 다시 할머니를 방문하였다, 깨털러!. 일기예보에 따르면 다음 날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어 할머니의 1년치 깨농사를 망치지는 않을까 근심이 되어 서둘러 다시 찾아뵙게 된 것이었다. 마침 밭에서 혼자 깨를 털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우리가 다시 찾아온 것을 알아보시고는 '무얼 하려고 왔느냐'며 혀를 차면서도 몹시 반가한 표정이셨다.
깨를 터는 일은 결코 간단치 않았다. 1차로 막대기를 갖고 깻단을 두들겨 깨를 털어 낸 뒤에, 2차로 바닥에 떨어져 나온 깨를 다시 채로 일일이 흔들어 자루에 담아 놓으면, 마지막에 할머니께서 키로 까불어 깨를 수확하게 되는 것이다. 1시간 반정도가 지났을까? 벌써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아직도 엄청나게 쌓여있는 깻단을 보니 해 넘어가기 전에 일을 마칠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이 들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할머니를 모시고 마을 밖에 있는 이장댁에 가서 버섯찌개로 점심을 함께 하였다. 할머니는 당신께서 식사를 대접해야 하는데 그리 못하는 걸 못내 미안하시면서 찌개가 다 끓을 때까지도 식당안으로 들어오지도 않으신채 밖에서 서성일 뿐이어서 우리가 식당안으로 할머니를 모시고 들어와야 했다.
식사를 마치고 깨밭으로 돌아왔는데 웬 사람들 두명이서 우리가 하던 깨를 털고 있는게 아닌가. 할머니께서는 '저 사람들이 또 왔노라'면서 버릇처럼 또 혀를 끌끌 차셨다. 알고보니 그 분들도 우연한 기회에 이곳까지 왔다가 우리들처럼 깨를 털어드려야 겠다고 다시 찾아 온 것이었다. 우리들은 이 기막힌 인연에 감탄을 하며 신기해하고 또 서로에게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4명이서 함께 일을 진행하니 여간 수월한 게 아니었다. 더욱이 이 분들은 솜씨도 빼어나고 성격들도 쾌활하여 오가는 농담속에 깨털이가 전혀 힘드는 줄 몰랐다. 그렇게 깔끔하게 일을 마치고 수확한 깨를 할머니댁까지 옮겨다 드리고 나니 마음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다.
우리 주위에는 이렇듯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있어 이 세상을 살아갈만 하게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들은 할머니의 허락을 받고 마을에 지천인 감나무에 올라 탐스러운 연시를 땄다. 이것도 어느정도의 기술이 필요했지만, 역시 친구는 이 방면에는 솜씨가 남다른듯 보였다. 실수로 땅바닥에 떨어뜨려 뭉그러진 연시를 보며 안타까운 탄성을 지르고 모두들 어린애가 되었다. 조용한 마을이 우리들의 웃음소리에 오랫만에 왁자지껄하니 소란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늘 우리가 재미삼아 수확한 연시는 할머니의 겨울양식으로는 그만일 것이다.
오늘 친구와 나는 할머니를 위해 쌀 1포대, 사탕과 초코렛, 라면, 소고기와 삼겹살 각각 1근씩을 준비해 갖다 드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치 잊혀진 마음속 고향을 되찾아 준 이 골뫼골 마을과 신씨 할머니의 수줍은듯 소박한 마음씨가 오히려 고맙고 감사할 뿐이었다.
이곳은 언제고 찾아갈 수 있는 선물같은 고향이 될 수 있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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