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레이크우드 CC - 보우회 골프모임

양현재 사색 2011. 4. 22. 16:54

레이크우드CC는 예전 로얄CC다. 언제부터인가 골프장이름을 영문으로 바꾸는게 유행이더니 요즈음은 아예 우리말로 된 골프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포CC, 신라CC정도일까. 이곳이 기왕의 영문이름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를 바꾸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머니 떠난지 벌써 32년. 그 당시 산소에 한 번 다녀오려면 의정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루에 몇차례씩 밖에 운행하지 않는 버스를 잡아타야 했다. 그런데 명절 때는 성묘를 가는 사람들이 일시에 몰리면서, 버스에 올라타는 것조차 전쟁 아닌 전쟁을 치러야 했다. 언젠가는 막내동생 창오를 버스 창문으로 밀어넣어 자리를 확보하는 변칙도 지금 생각하면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우리 만울님과 결혼한게 81년도이니까 이 시절부터 우리 형제들과  이런 아귀다툼을 함께 겪은 유전투 경험자인 셈이다. 만울님과 한 식구를 이룬지 금년이 30년이다. 고락을 함께 나누었다는 동지의식이랄까? 요즘들어 만울님이 더욱 애틋하고 귀엽기 까지 하다.

 

율전리에 있는 길주군민회 망향동산에 모셔진 어머니 산소를 가려면 지나치던 곳이 바로 로얄CC다. 이곳에 다다르면 질식할 듯하던  만원버스안에서 꾸겨진 몸을 어느정도는 추수릴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었고(아니,시루떡 고통에 우리들 몸이 그 사이에 익숙해 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열려진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시원한 시골공기에 느긋한 여유를 찾곤 했었는데. 그리고, 이 로얄 CC입구 바로 옆 나지막한 동산에는 나의 둘도 없는 친구 명식이 부모님 묘소도 자리잡고 있어 이곳을 지날 때마다 만울님과 형제들에게 번번히 이 사실을 상기시켜주곤 했었다. 명식이는 일찌감치 앤아버의 미시건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그곳에 정착해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런 식으로라도 친구부모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깆추었고 친구에 대한 우정도 상기하곤 했었던 같다. 역시 보성동문인 이 친구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슬픈 일이다.

 

오늘 임창수 사장의 제의로 이곳에서의 보우회 골프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오래 전부터 보성 선후배들이 이런 류의 만남을 가져왔다고 한다. 오늘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몇 분들이 불참하고 6명의 동문들만이 2팀으로 나뉘어 운동을 했다. 임사장과 나는 61회 선배님과 한팀을 이루었고, 다른 한팀은 65히, 66회 후배들로 구성이 되었다. 의정부에서 지척인 위치인데다가 옛날부터 눈에 익혀온 인연때문인지, 아니면 동문들과의 격의 없는 자리여서인지 오랜만에 즐거운 라운딩을 가졌다. 투백 캐디제인 이 골프장의 룰에 따라 배정된 캐디언니는 고정숙. 의정부 중앙초등학교 후배란다. 신기한 일이다. 고양에게 특별한 애정을 갖게 되는게 자연스러운 일이겠지.

 

혜화동 1번지에서 동문수학한 동문들을 만나면 어느 순간 비슷비슷한 느낌이랄까, 성향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이게 아마도 오랜 역사속에 이어져 온 전통, 학풍이란 것일 것이다. 내게 있어서 보성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의정부에서 꽤나 열심히 공부를 하여야 합격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학교가 아니던가. 아버지는 내게 굳이 보성중학교를 권해 주셨다. 3.1운동 당시 천도교재단이 운영하던 곳이고, 민족학교라는 전통을 감안한 깊은 뜻이 숨겨져 있었다. 중학교 입시합격자를 라디오방송으로 발표하던 시절이었는데, 이 때의 드라마같은 합격소식을 온 동네 어른들이 한 방에 모여 트랜지스타 라디오를 가운데 두고 허리를 잔뜩이나 구부리고 귀 기울이던 모습이 그림속 풍경처럼 아스라하다. 수험번호 110번이 라디오를 통해 호명될 때 동네분들과 만세를 부르며 함께 얼싸안던 모습이 흑백사진이 되어 스쳐 지나간다. 이 순간을 이날 이 때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반추하고 가슴 떨려했던가?  이날 합격소식은 아마 나로 인해 부모님을 한껏 기쁘게 해드린 몇 안되는 사건이었다. 아버지는 적지않은 돈을 내서 직장분들을 초청하여 무슨무슨 관이란데서 기마이를 쓰셨으니까. 늘 막걸리나 소주 한잔 걸치고 귀가하셔서 딸그락 거리는 도시락을 내려 놓으시며 꼬린내나는 양말을 마루에 벗어 놓던 분이 말이다. 중학교 입학식날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내게 해 주셨다. "이북 고향에서 이 소식을 들었다면 얼마나 대단했을까?" 전쟁 중에 월남하셔서 이런 조그만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할 만큼 큰 희망을 품기에 이 분의 일상은 너무나 팍팍하고 고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아버지가 최근에 우리곁을 떠나셨다. 무슨 일로도 이제 다시 이 분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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