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몇 번이나 잠을 깼는지 모르겠다. 이포CC에서의 라운딩 약속 때문이다. 정경수 사장의 초청한 자리다. 6시30분에 클럽하우스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5시에는 집을 나서야 할 것이다. 정경수 사장은 보성고등학교 후배다. 영국에서의 주재원 생활기간 중 만났으니 오래된 인연이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데면데면하게 대하기가 조심스러운 사람이 있다. 정사장이 그런 사람이다. 워낙 매사가 분명하고 깍듯해서 그렇다. 자산운영분야에서는 시장에서 인정할 만큼 탁월한 능력과 경력을 갖고 있다. 영국생활 기간 중 자기 모친께서 방문하셨을 때 주말이면 어김없이 차로 A3도로를 달려 일본사람이 운영하는 골프장(올드 쏜)에 달린 목욕탕에 이 분을 모시고 다니던 모습이 떠오른다. 런던에서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우리식 목욕탕이 있는 곳이어서 칙칙한 영국 날씨에 고생하실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함이었다. 효자다.
새벽 4시 10분에 맞쳐놓은 알람소리에 일어나 창밖으로 귀를 기울인다. 빗소리가 들려온다. 그래도 모를 일이니 대충 준비를 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준비물은 모두 챙겨 놓았기 때문에 간단히 이 닦고 눈꼽만 떼면 된다. 92년도부터 골프를 시작한 이래 몸에 밴 익숙한 수순이다. 유리문을 열고 빗방울의 굵기를 가늠하는데 천둥소리가 마음을 더 심란하게 한다. 5시에 짐을 챙겨 지하 주차장까지 가는데 빗방울이 제법 굵다. 6시 30분까지 도착하려면 지금은 출발해야 한다. 빗길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시동을 걸고 아파트를 나서며 정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라운딩 가능성을 타진한다.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인 모양이다. 일기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끝에 결국 뒷날을 기약하고 오늘 행사를 취소하기로 하다. 차를 되돌려 주차장에 파킹을 한 뒤 골프백을 들고 불꺼진 집을 더듬더듬하며 들어서다.
지난 3월6일(토) 역시 이포CC에서 이찬의 사장과 라운딩을 갔다가 이틀전에 내린 눈 때문에 3홀만 치고 중단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비때문에 출발도 못하고 취소했으니 이포CC와는 인연이 안 닿는 것 같다. 정사장과 오늘 라운딩을 했다면 영국에서 귀국한 이래 15, 6년 만에 함께 하는 셈이었을텐테. 아쉬운 일이다. 기왕에 일어난 김에 어제 하다 중단한 중간고사시험 채점을 마치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의 운율이 이 새벽의 정취를 더욱 아늑하게 한다. 문득 대학교 1학년 때 도서관에서 읽었던 어느 무명시인의 싯귀가 떠오른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귀기울이며, 혹시나 오마 하고 떠난 어머니의 문고리 흔드는 소리는 아닐까 ? '하는 그런 애절한 그리움을 담은 내용이었던 것 같다. 내게는 더 이상 기다릴 어머니는 이 세상에 없다. 지난 연말 아버지 마저 떠나신 뒤로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아버지의 추억과 오버랲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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