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이야기

겨울 이야기 2023

양현재 사색 2023. 6. 19. 18:37

I.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과세 편안하셨습니까? 새해 첫 출근일입니다. 예전같은 마음은 아닙니다만 다시 꿈꾸기 위해 어깨를 활짝 펼쳐봅니다.

 

새해 첫 날
무량한 하늘이
첫닭 울음소리에 열렸다
대지를 빗질하는 
성긴 바람
다시 꿈꾸기 위해
우리 모두 날개가 돋는 날

만나는 사람마다 머리 숙여 

새해 덕담을 나눈다. 

보통사람들의 소박한 소망들이 

결실로 맺어졌으면 좋겠다.

 

II. 귀촌한 친구로부터의 새해 선물
도고온천 근처 농촌으로 귀농한 친구가 연하장과 함께 손수 수확한 농산품을 보내왔다. 직장생활을 마치고 농부가 된 친구는 그 흔한 카톡도 않고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고 있다. 꼼꼼하게 테이핑한 박스를 띁으니 친구의 냄새가 느껴진다. 건강히 잘 살았으면 좋겠다.

 

구름덮힌 남녘
그곳에서 날아온 
친구 소식

반가운 연하장  한 장
좁은 공간에 깨알같이 적어보낸
간절한 소망과 다짐

연하장에선 햇살이 살아 퍼덕거리고
눈에 익은 글씨체에선 농부의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쑥 냄새가 난다

새로운 한 해
친구의 바람대로 
새빛으로 
마음을 닦아야지

 

III. 밤새 꽃을 틔운 난초 화분

창가에 난초 화분
오랫동안 남녘을 향해
그리움으로 놓였다가
밤사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야윈 꽃대 끝 하이얀 꽃의 향기가 은은
어디쯤 계시다가 
아직 때묻지 않은 시간
저 너머에서 불현듯 보내온 
당신의 목소리를 듣는듯

 

IV. 언젠가 이 겨울도 추억이 되겠지

목요일. 그간의 강추위가 오늘부터는 다소 풀어질 모양이다.
새벽에 스포츠센터에서 울려나오던 여자가수의 닟모르는 노래가 자꾸 귓가에 맴돈다. 낮게 깔리다 순간 끄집어 올리는 긴 음절, 애타는 호소력. 때론 이렇게 이름 모르는 사연과의 만남이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는가 보다. 

 

한기를 품은 하늘
파랗게 날이 섰다
잔설 위에서 재주넘는
아침 햇살
바람은 가지에 매달린
추위를 쓸어갔다 실어오고
언젠가 이 겨울도 
추억이 되겠지

 

V. 소한 아침에

오늘 소한
빙점에 갇힌 세상
섣달 보름 둥근달이
초저녁 하늘에 떴습니다

가슴을 더듬어 

마음을 만져봅니다
지금 가슴에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을 위하여 

 

VI. 내 마음 끝자락 빛나는 별 하나

나만 알고있는
내 마음의 길을
따라 가면
그곳엔 언제나
빛나는 별처럼
당신이 있습니다

 

VII. 서랍정리

새벽운동을 나서는데 약간 기울어진 밝은 달이 중천에 둥실 걸려 있다. 저 달 저물고나면 음력으로 새 해.

문득 휘청거리며 살아온 나 자신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하게 느껴졌다. 자기연민인가? 
오늘 낮 기온은 어제보다 더 올라 영상7도까지. 그래도 그늘진 곳엔 지난번 내렸던 눈이 조각얼음으로 굳어있다.

그 모습이 대견하여 발로 툭툭 건드려보았다.

 

책상서랍을 하나씩 정리하다보니
지난 열두해 동안 쌓였던 잡동사니가 하나가득

버리자니 아쉽고 챙기자니 다시 볼 일도 없을 

가지가지 메모며 사진들
그리고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저린 사연들까지

그때 난 뭘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래
시간은 거기 그대로 머물러 있는데
나 홀로 쫓겨 살아왔는가 보다

 

VIII. 내 마음 속 당신

오랫동안 뵙지 못했는데도
방금 만나고 헤어진듯
내 마음 속에서
당신은 늘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구름가듯 바람불듯 흘러가도
기다림은 그리움이 되어
당신은 내 마음 한가운데
나이테처럼 선명한 걸 보면

나는 

당신을 참으로 연모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IX. 나도 너의 그리움이 되고 싶다 

섣달 스무 하루인데 새벽달은 여전히 밝다. 고요한 밤하늘을 밝히고 있는 달을 올려다보면 자연히 마음이 숙연해진다.

아무리 강인한 성격이라도 달을 향해 절로 경배를 드리게 된다.
어제 대학동기들과 뱅뱅사거리에서 점심모임을 가졌다. 낮술을 마시고 알딸딸하여 집에 일찍 들어가 쉬었다.

도고근처 농촌에 귀농한 친구도 오랫만에 나와 많이 반가웠다. 철마다 쥐눈이콩이며 각종 효소를 보내와 잘 먹고 있는 고마운 친구다..
목요일. 밤늦게 비소식이 있다..

 

누구나 꿈꾸는
사랑의 목마름이 있지만
살아가며 
착하고 고운 사람 만나
마음을 터놓고
허물없이 기대며
살아가는 이 몇이나 있을까
네가 나의 그리움이듯
나도 너의 그리움이 되고 싶다

 

X. 겨울비

밤새 빗소리에 잠을 설치다.

비는 사람의 마음을 밖으로 잡아당긴다. 그래서 비오는 날엔 사람들은 창가에 앉아 빗소리를 좇는가 보다.

마주 바라볼 수도 없는
멀고 먼 나라에 계신
그대
내 가슴에 서러움이 쌓이도록
때론 그리움이 되고
보고픔이 된다

XI. 눈을 기다리는 마음

날이 다시 추워졌다. 하늘은 파란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눈발이 약하게 흩날린다

눈 오는 날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누가 찾아올 것 같아서 좋다

눈 오는 날 시를 읽고 있으면
눈에 파묻힌 집에서 사는 것 같아서 좋다

 

토요일에 결혼식 다녀왔고, 일요일엔 뭘 좀 준비할 일이 있어 종일 책상을 안고 지냈다.
다시 월요일. 이번 주말 설연휴가 시작되니 마음만 공연히 붕~ 뜬다.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
기어이 눈은 내리지 않고
나무마저 떠나간 길위엔
하얀 바람만 무심
옷을 반쯤 벗은 
겨울의 풍경이
떨고 있다

 

XII.흔들리는 나

춥다
햇살은 여리고
바람은 마을을 더 추운 나라로 몰고 간다

하늘을 덮은 구름
한기에 움츠러든 사람들이 거리의 풍경이 된 겨울

안으로 안으로 사그러지는 인생의 결기
따뜻한 미소 한 점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더욱 그립다

가슴을 더듬어 마음을 만져보자
지금 흔들리는 나를 위하여

 

XIII. 설밑

성급한 아이들

무지갯빛 색동옷 차려입고

골목길을 달리는
잊고 있던 내 마음 속 고향이
추억의 커튼을 살며시 들어올리는

설밑

빕짓는 연기
온가족 둘러앉아
가래떡을 썰며
화롯가 옛날 이야기
유성이 흐르는 밤

그 아련한 추억의 프리즘
떠다니는 구름에 실려
섣달이 간다
고향이 온다

 

XIV. 대한 추위에

바람이 세상을
더 깊은 겨울나라로 몰고갔다

시베리아 한파에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종종걸음을 치는 아침

고향을 다녀온 사람들은
부모님, 형제자매들의 정과 함께 시름도 담아왔을 것이디

아이들은 꿈을 키우고
어른들은 꿈을 비운 설명절

이 한파 물러갈 때 쯤이면
고햠 들판에 쌓인 눈도 녹겠지

이럴수록 따뜻한 안랫목이 더욱 그리워

 

XV. 눈 내리는 밤에

사르락 사르락
흰 눈이
얌전히 내리고 있습니다

저 순백의 유희
동화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밤을 지키는
눈사람이 되고 싶어요

 

XVI. 홍시

겨울 광 속의 항아리엔
늘 홍시가 있었다
밤중에 손가락으로 
쿡 찔러
말랑한 놈 골라
한 입에 삼켰지

손탄 줄 알면서도
도둑고양이 탓하시던
어머니

어머니는
홍시 좋아하던 아들이 보고싶고
아들은 어머니 회초리가 그립다

 

XVII. 너에게 나, 나에게 너

우리는
손을 잡고
두려움 절반
설레임 절반으로
어둠을 헤쳐왔다

 

그리고
이제
빛속을 걸을 것이다

 

그렇게

너에게 나는

나에게 너는

익숙하고

잘 어울린다

 

이 강. 1970~

행복했던 시절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정성스럽게 그려 추억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만드는 이강 작가.의미를 빠르게 잊는 세상에서 '좋은 추억'이 주는 치유의 힘은 크다. 이강 작가의 작품에는 옛 시절의 이불, 자개장, 베개, 인형, 장식장, 바느질함, 밥상 등이 등장한다. 이 소박하고 정겨운 것들은 지나간 시간을 그대로 재생케 하는 힘을 지녔다. 익숙하지만 그래서 가장 편안했던 순간의 정서를 불쑥 불러일으키는 마법을 만들어 낸다. '삶을 지탱하게 해 준 것은 거창한 말이나 돈이 아니라 언제든 따스하게 바라볼 수 있고 만져 볼 수 있는 사소한 사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상적인 사물들이 내 삶에 녹아있는 철학이 되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라고 작가는 전한다. 작업은 모델링 페이스트를 쌓고 다듬는 것부터 시작한다. 조소와 같은 두터운 중량감, 입체적 질감이 만들어진다. 그 위에 율동감 있는 색채의 향연이 펼쳐진다. 화려하지만 요란하지 않다. 알록달록한 이 오방색들에는 그리운 정서가 스며있고, 옛 마음을 소중하게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졌다.ㅡ출처 한국화랑협회 이강 초대전 호시절 소개글 중에서 (모닝갤러리_민병두 202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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