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4월의 첫 날에
4월의 첫날
너를 닮고 싶다
매화
추워도 향기를 팔지않는 일생
부끄러워라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삶
뻔한 길을 헤맨
안개속 세월
돌아보면
말은 빗나갔고
눈빛은 어긋났다
꽃뿌리며 찾아온 4월에
돌아보는 내 자리
II. 그대 앞에 한 잎 봄꽃이고 싶어라
나도 봄꽃처럼
나풀나풀 웃음짓는
한 잎
청초하게 피어보았으면 좋겠다
그 잎 잔잔하여
아지랑이 맨 끝
조롱조롱 매달린 그리움이
부스스 깨어나
봄바람에 날리고
아스라한 향기에
젖은 가슴 흔들리면
눈부시게 눈부시게 다가올까
그대
그대가
벌이라도 좋고
나비라도 좋고
지금 그대로도 좋아
나는
그대 앞의 한 잎
봄꽃이고 싶다
III. 봄날 아침 9시
살포시 내려앉은 벚꽃위로
아침 햇살이 찬란하다
다시 바람을 부르는
새아침의 고요한 아우성
꽃은
그녀의 눈망울에서 졌다
가다림도 너무 길면
외로움
모든 소망
슬픔을 안은채 떠나고
이제 꽃은
우리들 술잔에 진다
저 투명한 봄날에 섞이려면
내 안의 무엇을 더 버려야 할까
탁한 눈으로 꽃을 본다
지금은
봄날 아침 아홉시
IV. 봄 바람
새벽안개 빗질하는
4월의 바람
새 옷 갈아입은 연두색 풀잎
흔들어
봄날을 노래한다
미루나무 어린 가지에 일렁이는
소리없는 저 아우성
꽃잎 흩뿌려
마른 대지위에 꽃방석 수를 놓는다
V. 이별 준비
오늘은 목요일. 4월의 끝자락.
멀어져 가는 아지랑이 따라 아픈 마음은 절룩거린다. 이별의 신호인가?
집을 것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삶이라
사는 동안만큼은
사는듯이 살아야 한다
마른 몸짓마저 묶어버리면
못되고 질긴 미움만 남아
그나마 맺은 세상 인연과도
이별을 해야한다
그러니
세파에 부대끼며
팍팍하게 살아도
잠간씩 여유를 갖고
잔잔히 재미를 느끼며
살아야 한다
VI. 꽃비 내리는 봄날에
세상을 씻기는 비
봄꽃도 함께 내린다
화사했던 벚꽃은 죄다 스러져
눈이 내려 쌓인듯
조팝나무
분홍색 마거리트도
원색의 향연을 마치는
4월의 마지막 주말
웃자란 봄이 허망하다
(2022.4월)
색면 추상화가 이혜인
수평 또는 수직의 평행선 위에 작은 점이 더해져서 보는 이의 시각 감각을 자극하며,부조 같은 질감을 느끼게 한다.
“빛의 존재를 예리하게 지각하고 섬세한 색채의 선율을 꾸준히 실험해 온 이혜인의 <There is> 연작은 색면 그 자체로 캔버스의 평면성을 표상하고 아크릴 물감이 빚어낸 섬세한 결로 회화성을 강화한다.
여러 색면이 시각적 알력을 주고받으며 밀고 당기는 긴장감을 창출하는 가운데 생겨나는 율동감은 화면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질서정연하게 기하학적 화면을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너비의 색면들은 구체적인 사물의 형상을 제시하지 않음에도 다양한 연상을 가능케 한다.
마치 문장의 빈칸을 채우듯 무엇 또는 누가 있는지를 사유하고 상상하는 동안에 ‘있음’의 실존적 대상은 점차 증가하고 그와 연관된 공간도 확장되어 간다. 미완의 인상을 풍기는 제목은 이혜인의 색면추상이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내포함을 암시한다. (모닝갤러리_민병두 2023.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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