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미주 통증의학과 의원" 방문 치료 및 영화 "써니" 관람

양현재 사색 2011. 5. 15. 01:28

오늘은 오랫만에 한가한 주말이다. 며칠 전부터 오른쪽 발바닥이 아파 걸을 때마다 통증을 느끼고 걸음거리도 영 불편하다. 살펴보니 오른쪽 발가락마디 위쪽의 발등부분이 문제인 듯하다. 나름대로 원인을 찾아보니, 요즘들어 구두를 오래 신고 지내서 신발 속에서 발이 압박을 많이 받은 때문인 듯도 하고, 왼쪽 발뒤꿈치가 새 신발때문에 갈라져서 오른발에 무게 중심이 쏠리면서 무리한 힘을 가한 때문인 듯도 하다. 젊은 여자애들이 굽이 높은 하이힐을 신고 다니면서 이런 증상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2년 가까이 신어 온 멀쩡한 구두가 심술을 부릴 것 같지는 않은데 웬일인지 모르겠다. 만울님은 정형외과를 가 보라고 성화지만 "가 봐야 뻔한 이야기 들을 텐데 뭐 이러다 낫겠지" 하며 공연한 허세를 부려 본다. 이렇게 아침 나절 미루적 거리다 문득 전태완 원장이 생각이 나서 길을 나섰다. 전태완 원장은 보성중,고등학교 동창이고 늘벗 멤버라서 각별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 사이지만, 그동안 단 한 차례도 이 친구의 병원을 찾은 적이 없었다. 딱히 그럴 일도 없었고, 바쁜 친구를 찾아가 어디가 아프노라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 썩 내키지 않은 때문이기도 했다. 그만큼 나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유난스레 감정을 드러내는 일에 몹시 서툰 성격이다. 막상 이 친구의 병원을 향해 집을 나섰지만 청량리 미주아파트 상가 2층(?)이라든가 정도의 막연한 정보만 가지고 있을 뿐이지  병원 전화 번호 하나 제대로 간수해 두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핸드폰으로 전화해서 '나 지금 니네 병원엘 가겠노라'고 사전에 유세를 떨고 간다는 것도 어째 요란스럽고 우습게 느껴졌다(이것도 또한 나의 모자란 생각이겠지만). 별수없이 가까은 친구에게 위치문의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우선 스스럼이 없는 이봉훈에게 전화를 하니 전화응답이 없다. 다시 유승식에게 전화를 하니 이 친구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넌 그것도 몰라 내게 전화를 해서 묻느냐? 그러고도 너희들 친구라고 하겠냐?'는 식으로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가차없이 질타한다. 부끄러운 속내를 들킨 기분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한바탕 요란을 떤 덕택에 승식, 봉훈이와 준화, 석호까지 한 무리가 되어 전 원장의 병원에서 토요일 한 낮을 보내게 되었다. 나, 승식이 석호가 차례로 병상침대에 누워 요기, 조기 하면서 아픈 곳을 짚어 주면 전 원장은 말 없이 침을 한 방, 두방씩 꽂아 준다. 나를 제외하고는 우리 동기들 중 많은 친구들이 이미 이 병원의 단골 내원환자다. 우리 나이에 여기, 저기 통증 하나라도 달고 살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랴? 그래서 전 원장은 우리 친구들의 주치의이고, 이 병원은 참새들의 방앗간이 된 지 오래다. 

 

전원장은 경희대 의대를 졸업한 통증의학과 전문의로, 이곳에 "미주 통증 의학과 병원(02-965-6688)"의 간판을 걸고 개원을 하여 요통, 디스크, 신경통, 오십견, 퇴행성질환, 근육통, 편두통, 관절통, 안면신경마비를 치료해 오고 있다. 개원 당시만 해도 통증의학이라는 분야가 낯설게 느꼈었는데 전국민 건강보험제도가 자리잡으면서 오늘날에는 우리 일상생활에 가장 가까이에서 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니 전원장의 선견지명이 탁월하다고 하지 않겠는가?  전원장은 학교시절부터 워낙 진득하고 심성도 고운 친구였다. 당시에는 키가 작은 편이라서 늘 앞자리에 앉곤 했는데, 어쩌다 선생님의 호명을 받고 일어나서 교과서를 소리내어 읽을 때는 얼굴이 뻘개지며 목소리까지 떨곤 하던 친구였다. 이런 사람이 작년부터 우리 63회 졸업동기 동기회장을 맡아서 친구들을 이끌고 있고, 각종 모임자리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니 참으로 큰 발전을 한 셈이다. 

 

친구에게서 치료를 받은 기분이 다소 묘했다. 병원에를 가면 공연스레 주눅이 들곤 하는 기분이 없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반면에 이 친구가 정말 제대로 치료를 하고 있는걸까 하는 의사의 보편적 권위에 대한 의구심이 슬그머니 일어나는 것은 대체 어찌된 노릇일까? 코흘릴 적부터 친구로 살아 온 때문일 것이다. 이 친구가 이런 얘기를 들으면 언짢겠지? 그래도 간호사가 3명씩이나 되고 치료시설도 고루 잘 갖추어 진 제법 큼직한 병원을 지금껏 이렇게 잘 운영해 오고 있지 않은가? 토요일은 1시까지만 진료를 한다는데도 환자들이 계속 몰려오는 걸 보니 내 마음이 으쓱했다. 친구가 입은 푸른 색의 가운도 제법 잘 어울려 보였다. 그래, 나한테야 그냥 친구일 뿐이지만 통증의학과 전문의 전원장이 아니던가?

 

전원장이 병원 문을 닫을 때까지 오늘 병원을 찾은 친구들과 함께 근처 중국집에서 물만두, 양장피에 고량주를 한잔 걸치고, 전원장이 합류하여 자장면, 짬뽕으로 점심을 때웠다. 나 뿐만 아니라 친구들 모두 어찌나 맛있게 먹었는지 예전에도 자장면이 이렇게 맛있었느냐고 한 마디씩 한다. 학교 다닐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결국 자장면 곱배기 한 그릇을 더 주문하여 한 젓가락씩 더 먹고서야 자리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즐겁고 즐거운 일이다.

 

친구들과 헤어진 뒤, 승식이 친구를 이끌고 근처 롯데시네마에서 영화 한 편을 관람했다. 2시 30분에 시작하는 강형철 감독의 써니(Sunny)라는 제목의 영화였다. 딱히 이 영화를 보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고, 그저 우리가 도착한 시간대에서 가장 빠른 시간에 상영되는 영화를 골랐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가 개봉 2주만에 100만 관객을 동원했단다. 이 영화는 1980년대 5공시절에 어느 여자고등학교에서 7명의 칠공주 왈패들이 써니라는 학내 써클을 구성하며 소녀시대라는 또 다른 써클과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명랑, 유쾌스토리인데, 영화속 주인공이 어느날 친정 어머니의 병문안를 갔다가 우연히 옆 병실에 암 말기 환자로 입원한 써니의 멤버, 하춘화를 만나게 되고, 이를 계기로 졸업 후 지난 25년간 각기 흩어져 소식을 끊고 살던 추억속의 친구들을 하나씩 찾아내 눈부셨던 우정을 확인하게 되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각기 팍팍한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잊고 살다가 고교시절 친구들을 만나며 자신들이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살고 있건 관계없이 그들 모두 역사가 있는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주인공 나미로 출연한 유호정의 살짝 지적인 모습이 예쁘고  중년의 삶을 살아가는 그만큼의 나이에 잘 어울리는 모습을 무리없이 표현한 연기가 참 인상적이었다. 영화 전편에 간간이 흐르는 추억의 팝송들은 아련한 옛날을 떠 올리게 해 주었고, 특히 리처드 샌더슨의 Reality의 음률도 정겨웠다.

 

학창시절 오류동에서 기차통학을 하던 승식이와 의정부에서 기차통학을 하던 우리를 선생님들께서는 '오류동 촌놈','의정부 촌놈'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오늘 두 촌놈이 청량리에서 만나 백주에 영화를 보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탈을 요하는 것도 아니었건만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러해 보지 못하고 살아온 일들을 오늘 많이도 감행했다. 편안하고 한가한 토요일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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