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兒立志出鄕關, 學若不成死不還. (남아입지출향관 학약불성사불환;남아로서 뜻을 세워 고향을 떠났으니 만약 학문을 이루지 못한다면 죽어서라도 돌아오지 않으리라)
얼마전만 해도 이 땅의 민초들은 너 나 없이 모두가 궁핍한 생활을 했다. 많은 형제들 모두에게 골고루의 교육기회를 부여해 주기에는 현실이 너무도 팍팍했다. 별수 없이부모는 형제들 가운데 장남 또는 장래가 기대되는 자식 한 명에게 몰아주기식 교육투자를 감행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자녀들은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부모와 함께 그 형이나 아우의 학비를 대기 위해 고향을 지키며 농사를 지어야 했다. 때로는 누이나 여동생이 그 학생을 따라와 공장에 다니면서 뒷바라지를 해야만 했을 것이니, 그 선택받은 자식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자신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있는 부모님과 형제, 자매들. "너만은 열심히 공부하여 우리 집안을 일으켜 다오." 자신을 향한 온 집안의 그런 염원을 새기며 각오를 새롭기 하기 위해 책상머리에 써붙인 글귀가 위 문장이었다.
성공하기 전에는 죽은 시신으로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노라는 이 비장한 각오는 이 한 몸을 태워서라도 반드시 성공하여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말겠다는 눈물겨운 다짐이었을 것이다.
이 시의 뒷부분은 埋骨豈期墳墓地 人間到處有靑山(매골기기분묘지 인간도처유청산;뼈를 묻을 수 있는 곳이 어찌 고행의 묘지뿐이랴 인간세상 어디건 묘지가 될 장소가 있나니)이다. 이 시의 작자는 "釋 月性"(석 월성;1817 ~1856)이라는 일본 막부시대 말에 살았던 眞宗(진종)의 스님이라고 하기도 하고, 村松文三이라는 사람의 작품이라고도 한다. 월성이 그 사람의 시를 벽에 써 붙인 것인데, 그것을 사람들이 오해해서 월성의 작품이라고 한다는 것인데 대체로 월성의 작품으로 보는듯 하다. 내게 이 작품의 작자가 누구인지를 가리는 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도 학창시절 양주의 어느 절에서 한 철을 보내며 이 글을 책상머리에 써붙이고 지냈으니까. 당시에는 앞의 두 귀절만 있는 줄을 알았고, 또 일본 스님의 글귀인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외롭고 고된 시절 나를 추스리고 잡아주었던 서리발 같은 회초리였음은 분명하다. 다만, 오늘 이 글귀와 함께 나의 오늘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실로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나는 부모님께 어떤 자식이었고, 형제들에게는 또 어떠한 큰형이었던가?
오늘 한 학기 강의를 마무리 하면서 새삼스러이 이런 비장한 글을 여러분께 소개하는 게 어쩌면 지나친 감상의 표출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 한 학기 동안 여러분과 나는 우리 대학내에 명품 강의를 만들어 보자는 서원을 세우고 약 15주간의 열띤 여정을 함께 달려왔고, 이제 그 줄달음의 마무리를 짓고자 하고 보니 새삼 달려온 시간에 대한 뿌듯함보다는 아쉬움의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이것이참으로 의미있는 도전이었고, 이런 노력의 결과가 착실히 축적되면 멀지않은 시간 안에 그 꿈은 이루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러분들에게도 당부하고 싶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이 젊은 시절 가슴에 품어 온 꿈은 절대로 놓치지 말고 끝까지 밀고 나가라!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시간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살고자 했던 내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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