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한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6월22일부터 시작된 장마는 오는 주말인 7월17일까지 무려 26일동안이나 지속되고 있다. 이처럼 길고 지루한 장마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이동폭이 좁은 장마전선'때문이라고 한다. 남북으로 이동하며 비를 뿌리는 장마전선은 보통 제주도 남쪽 해안으로 내려가 2 ~3일 정도 머무르다가 다시 북상하며 비를 뿌리곤 하지만, 올해는 장마전선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비를 쉬지 않고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간 중 서울의 비가 온 날은 예년의 평균인 9.7일을 훌쩍 뛰어넘는 20여일에, 강수량도 평년 185.8mm의 4배에 이른다고 한다. 애써 가꾼 농작물을 하루 아침에 망쳐버린 농민들의 한숨이 들려오는듯하여 마음이 아프다.
이 와중에도 금주 목요일부터 3일 연속 골프라운딩 일정이 잡혀 있었다.
목요일(7월14일)에는 화산 CC에서 보성63회 월례정기 골프모임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 모임은 보성고 63회 동기들이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는데, 나는 그간 평일 골프를 자제해 왔기 때문에 이 모임에는 한 번도 참여할 수 없었다. 현직에서 물러나와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차에 모임에 참석해보지 않겠느냐는 주위 친구들의 은근한 권유가 있으니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 아닐까 싶다. 이 늦은 나이에 은근슬쩍 엉덩이 들이밀듯 참석하겠다는 나를 마다하지 않으니 친구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오후 1시 티엎을 앞두고 하염없이 쏟아지는 장대비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심란하다. 결국 10시 10분 임창수사장으로부터 오늘 모임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다. 아쉽지만 어찌하랴, 다음 기회를 기약할 수밖에.
금요일(7월15일)에는 가산노블리제 CC에서 서울대 행정대학원 골프모임이 있었다. 지난 6월 정례모임에서 제안된 모임인데, 회원들의 호응이 예상외로 좋아 모두 11명이나 참석하기로 했다. 전날 이승무 총무로부터 참석여부를 재확인까지 받았다. 이총무는 이 날 골프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하면서도 참석예정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행사진행을 꼼꼼히 챙겨 주었다. 나는 목동에서 유영찬 전 국과수 소장을 모시고 빗길을 달렸다. 만울님은 요즘들어 내가 직접 운전대를 잡는 게 여간 걱정이 아닌가 보다. 안전운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가산노블리제는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우금리에 소재하고 있는 27홀(마운틴, 밸리, 레이크 코스)의 회원제 골프장이다. 2010년 4월에 정식 개장을 했으니 이제 만 1년밖에 되지 않은 신설 골프장이라고 하겠다. 가산면은 나의 외가가 있던 곳이다. 지금은 외가 친척들이 대부분 이곳을 떠났지만, 어릴적 방학이면 아우와 함께 한동안 외가에서 지내다 오곤 했다. 외사촌 동생들,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메뚜기, 방앗개비, 여치를 잡으러 뒷동산이며 논둑을 몰려다니던 추억들이 흑백 활동사진처럼 눈가를 스친다. 원두막에 올라앉아 들려오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방학숙제를 하던 일이라든가 푸르른 들판위의 고추잠자리떼, 한가로이 풀을 뜯는 무심한 소의 모습 등 시골생활과 관련된 갖가지 추억들은 모두 이 시절과 관련된 것들이어서 이 고장은 내게 정겨운 고향과 같은 곳이라 하겠다. 포천은 전형적인 농촌으로 농부들은 생산된 농작물을 버스에 싣고 의정부까지 팔러 나오곤 했는데, 의정부 버스터미널에 버스가 도착하면 장사꾼들이 버스 안에까지 올라와서는 이들이 팔러 온 농작물을 빼앗듯이 우악살스럽게 가로채 값을 터무니없이 깎아 치곤 하던 모습이 어린 마음에도 그리도 애처러워 보였던 생각이 난다. 그만큼 포천은 시골이었고, 외가 친척들을 통해 본 이곳 사람들은 순박하기 짝이 없는 분들이었다. 이런 곳이 지금은 아파트, 음식점, 가구상가들이 즐비한 도회지가 되었으니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따로 없다. 어린시절 당시에 훗날 어른이 되어 이곳에서 골프를 치게 될 줄이야 상상이나 했으랴.
클럽하우스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1시 티엎을 위해 레이크코스로 이동하였다. 단체사진을 한 컷 찍고 출격을 할 때까지만 해도 다소 불편은 해도 비를 맞아가며 라운딩을 할 정도는 되었다. 그러나 웬걸, 3번째 티박스에 올라서자 폭우에 시야까지 흐려져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결국 전 팀 라운딩을 포기하고 서둘러 클럽하우스로 돌아오니 몰골들이 가관이다.
대신 일정을 앞당겨 오늘 2부 행사로 준비한 이곳 포천 영북면 산정리에 행정대학원 원우 김규흔 관장이 설립한 "한과문화박물관 한가원"을 방문답사하였다. 한가원은 세계 최초로 한과를 테마로 세워진 한과박물관이자 교육관으로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잊혀져가는 우리 전통과자인 한과를 알리기 위해 건립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한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유뮬전시를 통해, 알리고, 직접 만들어 보는 체험교육으로 배울 수 있는 문화교육공간이라고 하겠다. 김규흔 관장은 국가지정 한과 명인(약과, 유과분야)으로 30여년간 오로지 자신의 열정과 신념으로 한과의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우리 전통 한과의 품질과 문화의 전파를 위한 한과의 삶을 살고 있는 자랑스럽고 훌륭한 분이다. 박물관을 둘러보며 친절한 안내를 받고 저녁식사까지 대접받았다.
토요일(7월16일)에는 이포CC에서 이찬의 사장, 한기주 사장 그리고 이날 처음 만난 장동수 사장과 라운딩을 하였다. 역시 장마 속에 어제, 그저께와 같은 상황이 되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정말 다행스럽게 무사히 라운딩을 마칠 수 있었다. 전반라운딩을 마치고 점심을 먹는 사이에 쏟아지는 폭우를 절묘하게 피할 수 있었고, 후반라운딩을 마치고 클럽하우스로 들어서니 또다시 장대비가 쏟아진다. 행운이다.
골퍼들사이에 '골프의 삼락(三樂)'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첫번째가 경기 후 클럽하우스 탕속에 느긋하게 몸을 담그고 있을 때 창밖으로 비 쏟아지는 걸 보는 쾌감이요, 두번째가 라운딩을 마치고 시원한 생맥주 첫모금을 마시는 상큼함이며, 세번째가 친구 차타고 뒷자리에 앉아 음악 들으며 알딸딸한 기분으로 깜빡 잠이 들었을 때의 달콤함이다. 오늘 이 삼락을 모두 가졌으니 우리들끼리는 희희낙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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