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간의 인도여행을 마치고 자리에 돌아왔다. 충격이었다. 이렇게 밖에는 달리 표현할 재주가 없다.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랫만에 블로그에 들어오니 먼지가 뽀얐다. 그래도 주인없는 블로그에 꾸준히 들러준 글벗들이 있어 고맙고 송구스럽다.
인도여행기는 빠른 시일내에 - 적어도 개강 전에는 - 정리해 볼 생각이다. 여독과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틀간 강연회에 참석해 좋은 말씀을 들었다. 여행 떠나기 앞서 들었던 강연과 함께 이들 세 강연의 소감을 정리해 둔다.
1. 7월21일(목) 신동아 창간 80주년 기몀 릴레이 강연 (3) - 유흥준 교수 "다시 장인정신을 말한다"
- 장인정신의 외형적 특징은 detail이 아름답다는 점.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점은 거의 본능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백제 금동대향로, 백제 무녕왕릉 출토 은제팔찌, 백제의자왕이 일본왕에 하사한 바둑알)
- 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우리나라 장인정신을 말할 때의 모토 : simple yet not humble, splendid yet not extravagant
- 장인정신은 시스템의 지원이 있어야 발현되는 것 - 성덕대왕신종 비천상 양옆의 총 1037자의 명문은 종을 만드는데 참여한 사람 8명의 이름과 관직, 그리고 주철기술자 4명의 직책과 이름을 밝혀 놓고 있다
- 기교를 뛰어넘는 무심의 경지 : 大巧若拙 不計工拙(큰 재주는 재주가 드러나지 않고 잘됐는지 못됐는지는 계산이 안된다)
어수룩한 듯 보이나 완전함보다 더 놓은 경지 'incompletion of the completion' (조선 백자 달항아리, 막사발; 계산된 美가 아니라 잘 만들겠다는 생각조차도 없이 자연스럽게 만드는 경지)
대단한 분이다. 문화재를 화면으로 보여주며 진행하는 강의에 2시간동안 푹 빠져들었다.
2. 8월22일(월) 우리시대 예술가의 명강의 - 성악가 김동규 "이 장면을 아시나요?"
- 오페라에서 배우들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써 배역의 캐릭터를 나타냄. 가령 테너는 직설적이고 정열적인 반면, 바리톤은 모사꾼의 역할을, 베이스는 왕이나 아버지의 역할을 담당
- 초기 오페라에서는 여자성악가가 무대에 설 수 없어 남자 대역을 썼다나
- 중국을 무대로 한 투란도트, 일본을 무대로 한 나비부인이 있는데 우리나라를 무대로 한 오페라가 없다는 건 슬픈 일
- 집안 가득히 귀로는 음악을 듣게 해 주고, 눈으로는 그림을 볼 수 있게 해준다면 그들의 자녀들은 세상을 결코 헛되지 않게 살 것이다
- 감동을 주려고만 하지 말고, 오히여 타인으로부터 감동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 음악회에서 박수의 타이밍 : 오케스트라의 경우 악장 중간에 박수를 치는 것은 아직 스토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연주자의 긴장감유지를 위해 삼가야 함. 반면에 오페라는 정해진 규칙은 없으나 주인공이 부르는 아리아가 끝났을 때 박수를 친다. 박수를 받는 동안 성악가는 휴식시간을 가질 수도 있음
얼마전까지 CBS FM에서 아침방송을 진행한 김동규씨를 직접 만나보게 되어 반가왔다. 이 날 청중의 대부분은 여성들이었는데 음악에 대한 이들의 높은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김동규씨는 중간중간 직접 들려주는 아리아는 이날 강연에 참여한 청중을 위한 고마운 덤이었다.
3. 8월23일(화) 신동아 창간 80주년 기념 릴레이 강연 (4) - 이덕일 소장의 "조선후기 정치사의 현대적 의미"
- '노론사관'(중국인의 시각에서 우리를 바라 본 역사관)과 '식민사관'(일본인의 시각에서 우리를 바라본 역사관)이 우리의 정신을 파괴하고 있다. 이제 우리의 시각으로 우리를 올바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 누구나 한글의 우수성을 소리 높여 외치면서도 정작 훈민정음창제시의 기본정신은 망각하고 있다 - 두음법칙의 비상식성, f와 v의 구분 불가, l과 r발음의 불가는 훈민정음의 본뜻을 왜곡했기 때문. 이를 온전히 되돌리는 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몫
-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차원 높은 고결한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미래상이 되어야 함
이덕일 소장의 일관된 현대사에 대한 인식이 매우 돋보이는 강의였다. 식민사관밖에 몰랐던 내게 노론사관이라는 색다른 지식을 일깨워 주었고, 독립운동가들의 조국광복을 향한 처절한 일편담심을 줄줄이 뿜어내는 이소장의 사자후는 나의 얄팍한 역사인식을 부끄럽게 했다. 우리의 근현대 역사사건 가운데 '만약'이라는 가정을 할 때 하나의 사건을 들어달라는 청중의 주문에 '백법 김구 선생이 주도하는 한독당이 이승만과 함께 선거에서 경선을 했더라면' 하는 이소장의 답변은 우리 민족 모두의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다.
지난 번 7월21일 강연 때는 강연말미 추첨행사에서 고급 썬크림에 당첨되었는데, 어제 강연회에서는 또 다시 신동아 1년 구독권에 당첨되었다. 생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지난 번 받은 썬크림은 인도여행길에 틈틈이 사용했는데(사실 내것은 1번 밖에 사용하지 않았고, 일행인 벗의 것을 얻어썼다). 좋은 강연을 들은 것만도 감지덕지인데 이런 횡재까지 하다니 별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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