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신경림 시인 강의 - 시를 읽는 재미

양현재 사색 2011. 7. 20. 00:49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가의 집에서 주최하는 "2011 우리시대 예술가의 명강의" 시리즈 7월강의는 신경림 시인을 연사로 초대하여  "시를 읽는 재미"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대략 70명정도의 청중이 모여 저녁 7시30분부터 9시까지의 강의를 청취하고 시인과 질의응답시간도 가졌다.

연단에 나선 시인은 자그마한 키에 마음씨 좋은 얼굴을 가진 분이었다. 강의시간 내내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차분히 강의를 진행하면서 청중의 반응도 세심하게 살피며 청중과의 눈높이를 맞추는 모습이 '참으로 곱게도 나이를 드셨구나'하는 느낌을 갖게 했다. 1935년생이시니 금년 76세다.참으로 오랫만에 편안한 시간을 가졌다.

 

강의주제 '시를 읽는 재미'는 어떻게 시를 감상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뒤집어서 보면 어떻게 시를 쓸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인이 제시한 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詩는 소통을 힘있게 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소통이 안된 시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詩란 소통, 즉 대화이며, 시인은 힘있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자이다.

2. 詩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고, 만지지 못하는 것을 만지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가요(노래)는 남들이 이미 보고, 만지고, 느끼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는 점에서 詩와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3. 詩는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보여줄 뿐이다.

詩는 이미지를 통해 무엇인가 떠오르게 하여야 한다.

4. 좋은 詩는 그 시대의 사상에 깊이 뿌리박고 있어야 한다.

독자는 시인이 살고 있는, 또는 살았던 시대상을 찾아낼 때 기쁨을 맛보게 된다.

5. 좋은 詩는 운율(리듬)을 갖고 자연스럽게 읽힐 수 있어야 한다.

6. 詩語는 맛깔스러워야 한다.

독자는 詩의 맛을 찾아 읽어야 한다.

7. 이밖에도, 詩는 독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수 있으므로 지나치게 도식적인 해석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말을 너무 멋있게 만들려고 하면 재미가 반감된다. 예나 지금이나 詩는 읽히지 않았다. 문제는 詩를 자꾸 읽어 친해져야 할 것이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나온 방담 몇마디.

1. 최초의 詩는 '갈대'- 대학교 2학년 때 발표

2. 시인 본인에게도 마음에 들지 않는 詩가 있고, 발표하지 않은 詩도 많단다.

3. 시 '가난한 사랑노래'를 짓게 된 뒷이야기 - 시인이 자주 들르던 길음동 막걸리 집 주인 딸이 연모하는 청년이 있었는데 이 남자가 운동권으로 지목되어 도피중이라는 하소연을 전해 듣고 이들의 사랑이 맺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어서 결혼을 서둘러야겠다고 마음먹고 결혼을 적극적으로 권하였다. 결국 이들의 결혼식 주례까지 서게 되었는데, 이들의 결혼식때 낭독한 축시가 '그의 사랑'이었는데, 집에 돌아와 흥에 겨워 다시 쓰게 된 시가 '가난한 사랑노래'이었단다.

4. 요즈음 시가 산문화되는 경향에 대하여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며 詩의  운율성, 상징성, 비설명성이라는 원래의 특성을 유지할 것을 강조한다.

5. 詩는 그 시대에 대한 질문이자 대답이다. 즉,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물음이며,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대답이기도 하다. 이처럼 詩는 그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어 참여시적 경향을 보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도, 목적시에 대하여는 선을 긋는다. 목적시는 시의 본질에서는 일탈된 것이라며.

6. 올바른 詩감상법이란 '이 詩의 재미, 맛이 어디에 있는가?'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학교에서의 詩에 대한 교습도 여기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가난한 사랑노래-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법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잎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