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힌 설산(雪山)과 그 순백마저 담아버린 새파란 호수, 길게 이어진 수로, 날렵하게 호수면을 미끌어지듯 지나가는 시카라(shikara). 이런 풍경만을 보면 스리나가르는 단연 지상낙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스리나가르를 포함한 카슈미르 지역은 분쟁지역으로서 여행자제가 권고되는 곳이다. 1948년 인도 독립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지역을 둘러싼 지리한 분쟁은 1995년 조랑말 트레킹을 즐기던 영국인 다섯명이 살해된 이후 한 때 이곳의 관광산업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고 말았다. 21세기 벽두 인도군의 물리적 힘에 의해 간신히 평화는 유지되고 있지만 아직도 여행을 적극 권하기에 꺼려지는 게 사실이라는 것이 여행업체의 설명이다.
제 아무리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해도 도로 곳곳에서 착검을 한 채 눈을 부라리는 인도군, 야간통행금지, 인도의 신문지상을 거의 매일같이 장식하는 죽음, 또 죽음의 현실앞에서는 배겨날 재주가 있겠는가? 이렇듯 심지어 인도인들조차 이곳 카슈미르지역에는 얼씬도 않던 시절에조차 유독 한국과 이스라엘 관광객들은 이곳을 활보하고 다녔다나 뭐라나.
하기야 적어도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이런건 뭐 그리 낯선 풍경도 아니지 않았던가? 지구상에서 가장 호전적이라는 북한의 전쟁도발의 위협도 수시로 받아가면서 계엄령도 여러번 경험하고 군생활을 통해 심신을 제대로 단련해 온 강인한 민족,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이곳에서 마주친 인도군인들의 모습은 왠지 어설퍼 보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어찌되었건 이런 우리들의 용감성 아니면 무모성때문에 호시절 가격의 1/20에 이곳으로의 여행을 즐길 수 있으니 우리들에게 이곳은 다른 의미에서 지상낙원은 아닐런지?
밤이 얼마나 깊었을까? 호수의 밤바람이 제법 차가워 방안으로 들어와 잠자리에 몸을 누이니 행복이 따라와 살며시 내 옆에 눕는다.
두손을 보듬어 가슴에 얹고 "기도보다도 더 간절한 소망, 목숨보다도 더 절실한 바램, 내 삶의 존재의 이유"를 되뇌어 본다.
"아직 그 말 못했는데...
이 말은 꼭 하고 싶었는데...
그러나 나 차마 이 말까지는 못했는데.... "
호수의 물결소리가 구슬프게 귓가를 두드린다.
얼마를 잤을까? 잠결에 문득 머리위에서 '꽝!'하며 귀청을 때리는 굉음이 나더니만 다리 아래쪽으로 연속적으로 '꽈다당!'하는 파열음이 울리며 지나간다. 나는 순간적으로 "아, 폭탄이다!"를 외치며 침대아래로 몸을 날려 머리를 쳐 박았다. 아무리 잠결이지만 그간의 학습효과를 통해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이곳에서 드디어 전쟁이 터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 자세로 몸을 낮추고 잠시 주위를 살펴보니 천둥, 번개소리가 아닌가? 밖에서는 장대비가 엄청난 기세로 쏟아 붓고 있는 듯 하다. 어정쩡하게 몸을 일으켜 침대위로 올라오며 어둠속이지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얼마나 웃기는 오두방정이란 말인가? 옆자리에 누운 동무는 나의 이런 소란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똑바로 누운 자세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부끄러웠다.
이 지방에서야 고작 해발 1,750m밖에 되지 않는 곳이라지만 우리나라로 치자면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1,705m)보다 더 높은 곳이다. 그래서인지 천둥소리가 마치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듯 요란하다. 이런 천둥소리는 생전에 처음이다.
번개빛이 방안에 번지고 바람소리, 빗소리에 창문은 심하게 흔들린다. 이러다 이 배가 호수 아래로 가라앉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방안의 창문을 다시 한번 단속하고 나서 자리에 누웠으나 으시시 춥다. 이 때 옆자리의 동무에게 담요라도 한 장 더 따뜻하게 덮어주며 보살펴 주지 않은게 지금껏 후회가 된다.
한 밤에 한 차례 소동을 피우고 수산시장(floating market)을 구경나갈 시간에 맞춰 일어났다. 새벽 4시다. 기상을 살피러 밖을 나갔더니 빗줄기는 많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빗방울이 바람에 날리며 얼굴을 때린다. 문을 열고 들어서려는데 뒤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뒤돌아 서서 살펴보니 어둠 속에 시카라 한 척이 희미하게 보인다. '아, 거기 알리 할아버지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언제부터 이곳에서 기다렸는지... 이 시각에 비를 맞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게 아닌가? 이럴수가!! 손짓, 몸짓으로 날씨가 이러하니 그냥 돌아가시라고 의사를 전달했다. 알아들었는지 "끙!하는 소리를 내며 시카라를 House Boat에서 밀어내곤 이내 어둠속으로 사라져 간다. 망연히 그 모습을 지켜보자니 마음 한구석이 짠~하니 죄송하기가 그지 없다.
무거운 마음에 방으로 들어오니 옆자리 동무가 깨어나 앉아 있었다. 새벽일정이 변경되었으니 '좀 더 자 두라'고 일러주었으나 쉽게 잠에 들지 못한다. 아마 진작부터 깨어 있었던 모양이다. 동무는 그렇게 나의 경망과 사려깊지 못한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새벽녘, 미나렛에서 울려퍼지는 아잔의 소리가 따갑다.
이슬람에서는 하루에 5차례 기도를 올린다고 한다. 동트기 직전, 어둠이 가시기 전에 올리는 새벽기도(파즈르), 태양이 정점에 있을 때 올리는 정오 예배(주흐르), 정오와 일몰의 중간에 올리는 오후예배(아스르), 해가 진 직후에 올리는 일몰예배(아그립), 그리고 완전히 어두워진 이후에 올리는 밤예배(이샤)가 그것이다.
빗소리를 압도하며 어둠속에서 울려 퍼지는 아잔소리는 가히 위압적인 느낌이 들었다.
늦으막한 시각에 일어나 구운 빵과 스크램블 계란, 따뜻한 우유로 아침식사를 때웠다. 소박하지만 호수위에서 맞이한 아침이 찬란하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니 다행히 빗줄기는 한결 가늘어 졌다. 시카라를 타고 달호수를 유람하기로 했다.
관리인을 통해 시카라 요금을 네고하니 터무니 없는 가격을 부른다. 우리가 호수위에 떠 있는 처지다 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알리 할아버지의 시카라를 이용하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이 관리인 녀석이 요금의 상당분을 소개료조로 떼어 먹는 게 아닌가? 힘없는 할아버지의 등을 쳐 먹어도 유뷴수지. 괘씸한 친구다. 지금까지의 여행중에 처음으로 접하는 교활한 녀석이다.
오늘도 달호수를 헤쳐나가는 알리 할아버지의 시카라의 항해는 이 분이 살아온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몹시 힘겹기만 하다. 건물 사이를 지날 때는 건물 외벽을 사뿐히 비켜 지나지 못하고 외벽에 이리저리 부딪히며 쩔쩔 매는 모습이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래도 한시간가량의 빗속 유람은 참으로 운치가 있었다.
수초가 우거진 호수는 이들 수초에 의한 자연정화가 잘 이루어지기 때문인지 생활오수가 호수로 그대로 흘러들어 갈텐데도 불구하고 맑고 깨끗하다. 수세미며, 연꽃들이 어우러져 있는 사이로 주민들의 생활주택이 드문드문 자리잡고 있는데, 대부분 가내 수공업으로 제작한 카펫트, 의류, 스카프 등의 특산품을 판매하는 상점을 겸하고 있었다. 호객을 하는 상인들의 모습은 간절하기만 한데 유람객들이 과연 이들의 물건을 얼마나 사줄까 은근히 걱정이 들었다.
알리에게 약속했던 요금외에 충분한 돈을 팁으로 드리니 우리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 주며 고마움을 표하는데 그 모습이 정말 지극하다. 내 손을 잡은 이 분의 손바닥은 마치 나무 등걸과 다름이 없을 만큼 거칠고 투박했다. 얼마나 이 일을 해 왔으면 이 정도일까? 앞으로 얼마나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으려나?
오후에 우리가 시내관광을 나갈 시간을 손짓으로 알려주고 그 때 보자고 했지만 알아 들었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말뜻을 알아 들었으면 좋으련만...
*수초들이 무성한 달호수의 정경
*달호수에 핀 아름다운 연꽃이 빗속에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다
*비내리는 달호수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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