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인도로 가는 길(기행 13-2) - 스리나가르 ; 달(Dahl)호숫가의 추억 3

양현재 사색 2012. 2. 27. 10:20

달호수 유람을 마치고 우리 일행 넷은 함께 둘러 앉아 라면으로 점심을 때웠다. 빗속의 라면맛이 색다르다.

얼마 뒤에 London House의 주인이 우리를 방문했다. 지금까지 만났던 지역 주민들과는 전혀 다른 옷차림과 세련된 말씨가 이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어렵지 않게 가늠케 해 주었다. 관리인 녀석이 주인의 근처에는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쩔쩔맨다.

주인은 이곳 여행자들에게 요구되는 신상명세서를 작성해야 한다며 양식을 내민다. 요구하는 정보가 매우 디테일하다. 나이, 직업, 주소, 여권번호, 여행지 등을 꼼꼼히 적게 되어 있었다.

인도 산스크리트어를 전공하는 일본의 어느 대학 교수가 자주 이곳을 방문한다는데 이 사람과 교분을 쌓은 덕분에 이 주인 아저씨는 일본어로 도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마침 우리 조원 가운데 일본에서 공부한 분이 있어서 이  두사람은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점심을 마친 뒤 주인의 소개를 받아 니샤트 박(Nishat Bagh)을 방문하였다. 무굴제국의 4대 황제인 제항기르의 처남에 의해 조성된 정원으로 스리나가르에 있는 무굴 정원 중 가장 크고 웅장하다.

니샤트 박을 인상깊게 하는 요소 중의 하나는 정원 앞의 달호수와 뒤편의 웅장한 피르핀잘 산맥이 일종의 차경(借景)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라 한다. 차경이란 정원 건축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주변 경관을 마치 정원의 부속물처럼 이용하는 기법이다. 자연풍광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로 자연과 인공이 혼연일체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단순한 건축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자연이고 또 하나의 풍경이 되는 것이니 주변 경관을 깎고 다져서 인위적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자연위에 그냥 얹혀있는 느낌을 준다는 면에서 미학적인 완성도가 높다고 할 것이다. 이곳의 정원을 예로 본다면  달호수와 피르핀잘 산맥이 모두 정원의 일부처럼 보이게 하여 그 웅장함이 더해지게 조성한 건축기법을 말한다고 하겠다.

 

오랫만에 정원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마치 무굴제국의 황족과 같은 기품을 흉내내어 보았다.

화초에 상당한 조예를 갖고 있는 일행 중의 한 분은 주변 경관에 어울리지 않게 인위적으로 심어놓은  화초들이며 정원수들이 본래의 자연스러웠던 정원 모습을 많이 훼손했노라고 몹시 안타까워 하며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런 지적을 듣고 살펴보니 조잡한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후대인들에 의한 원형의 훼손이다. 늘 그러하듯이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는 말이 진실이다.

 

니샤트 박을 나서 오토릭샤를 타고 지나는데 골프장이 눈에 들어 왔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진작 알았더라면 나인 홀이라도 라운딩을 했으면 두고두고 색다른 추억거리가 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다. 아쉬운대로 입구에 들어서서 정문 경비원들에게 이것 저것을 물어보며 골프장을 일견하였다. 프라이빗 골프장인데 겉에서 보기에도 관리상태가 매우 훌륭해 보였다. 이런 분쟁지역에 골프장이 있다니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정원구경을 마친 뒤에 시내관광을 하였다. 구시가지가 있는 구역은 제법 고급 상품들을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있고 사람들도 북적거렸다.

옛날부터 이 지방은 유태인 공동체가 존재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모세의 무덤도 어딘가에 있고,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게 아니라 카슈미르에서 80세까지 오래 오래 사시다가 이곳 구시가지 어느 곳에 묻히셨다는 기록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말이다. 이런 신비스러움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지만 워낙 정정이 불안한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 왔다간 사람들이 그리 많지도 않을 뿐더러 기록도 별로 없어 단지 신비로움만을 더 크게 하는 곳인 것 같다. 

 

이곳에 왔으니 저녁식사는 한 번 거창하게 해도 좋을듯 싶다. 주인에게서 추천받은대로 스리나가르에서 가장 유명한 중국 요리점인 라사 레스토랑(Lhasa Restaurant)을 찾았다. 커다란 정원을 끼고 있어 은은한 불빛 아래 시원한 바람을 쐬며 식사를 즐기며 정담을 나눌 수 있는 곳이었다. 온종일 걸어다녀서 그런지 아니면 어제 밤 천둥, 번개소리에 밤을 설쳐대서인지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밤이 늦었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시카라에 몸을 싣고 호수위를 미끌어지듯 스쳐 지나가는데 알딸딸하니 오른 술기운에  나그네 마음은 어느덧 풍선이 되었다.

 

 

"비오는 날 늦은 오후에

거리가 훤히 보이는 창가를 바라보며

어느 누굴 막연히 기다려 본 적이 있어

그것도 사랑이라고...

그 마저도 그리움이라고...

목놓아 울던 나

 

이제 힘들어도 한 번 웃어봐

화려하지도 슬프지도 않은

그 모습 그 표정 그대로를"

 

 

 

*무굴제국때 조성된 가장 웅장한 규모의 정원인 '니샤트 박' 

 

*공원에서 바라본 달 호수; 차경(借景)효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스리나가르 최고의 중식당, '라사' ; 우리의 낭만적인 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