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속의 작은 티벳, 다람살라를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불과 사흘간의 시간이었지만 많은 추억거리를 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민속 춤을 앙징맛게 추던 어린이들의 맑은 눈 빛이며 코라길에서 만난 순례자들의 선한 얼굴들, 그리고 거리마다 새겨 놓은 귀한 인연.
The will of dead. The hope of living.
Tibet
Regaining independence.
But the middle way is best.
어느 티벳 가옥에 걸려 있던 글귀다.독립을 그토록 간절히 염원하지만 'middle way', 즉 양극단이 아닌 중도가 최고라고 하는 티벳인들.
지금 이 시간에도 티벳 본토에서는 젊은 열사들의 안타까운 분신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앞에 과연 이런 온건적 비무장 투쟁이 최선의 길인지 나같은 범부로서는 언뜻 납득이 가질 않으니 그릇의 크기를 탓할 수 밖에 없는듯 하다. 그렇지만 나는 진실로 이들에게 광복의 그 날이 어서 속히 찾아오길 간절히 빌어마지 않는다.
짙은 안개와 함께 어둠이 소리없이 내려앉는 저녁나절. 훗날 다시 한 번 이곳을 찾을 날이 있을까?
아쉬움을 담은 채 출발한 버스에는 델리까지 가는 다른 여행객들도 함께 동승하여 각국의 언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제법 배낭여행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두시간 달리던 차가 어느 작은 마을앞에 멈추어 섰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잡화상점의 백열전구빛만 희뿌옇게 주변을 힘들게 비추고 있는데 비마저 내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델리까지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한단다.
차 안에서 얼마를 기다렸을까 드디어 버스가 도착했다. 그런데 이 때 문제가 생겼다. 차를 옮겨 타야 하는데 '아뿔싸' 문이 열리지 않는단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버스 이동 중에 크고 작은 말썽이 없었던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도 결코 예외는 아니었다. 갈 길은 멀고 문은 열리지 않고 딱한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창문을 열고 버스 안으로 들어가는 소동을 겪고서야 버스는 출발할 수 있었다. 이 와중에 어디서 구해왔는지 사다리를 창문에 걸치고 여행객들을 부축하여 버스안으로 안내하는 일이며, 짐을 옮겨 싣는 일에 젊은 이스라엘 여자 여행객 두사람이 팔을 걷어 부치고 앞장을 섰다. 행동이 조직적이고 씩씩하다. 아마 자기네 나라 군대에서 경험한 경력이 빛을 발한 것인듯 싶었다. "우리나라도 여자들을 군대로 보냅시다!!!" 총각인 타타씨가 농담같은 진담을 해댈만하다. 나도 한 표 보태고 싶다.
밤새 달려온 버스는 아침 늦은 시간에 우리를 델리 시내에 내려 놓았다. 이번 여행길의 출발지였던 이곳으로 16일만에 돌아온 것이다.
탁한 공기, 번잡한 거리, 남루한 옷차림의 사람들. 인도 속의 인도, 델리다. 여행의 출발을 위해 찾았던 이 도시가 주었던 약간의 긴장, 호기심은 간데 없고 마치 전혀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행사의 친절한 배려로 우리 일행은 Sterling Inn호텔에서 방을 배정받아 샤워를 하고 옷도 깨끗하게 갈아 입을 수 있었다. 밤새 쌓인 피곤이 멀리 달아난듯 몸과 마음이 가볍다.
늦은 밤 11시 비행기편(AI 310)을 타면 되니까 낮시간 동안 델리 시내를 관광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우선 얼큰한 한식으로 입을 즐겁게 해야겠다 싶어 일행들과 호텔근처에 있는 한식당, "쉼터"를 찾았다. 꼬불꼬불 골복길 끝에 위치한 이곳은 마치 대학 근처의 주점같은 분위기다. 여행객들이 죽치기 좋은 곳이라는 의미의 이 식당의 이름값에 걸맞는 곳이라고나 할까. 시장이 반찬이기도 했지만 음식맛도 나무랄데가 없었다.
식당안에 혼자 식사를 하고 계시던 60대 초반의 남자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 분은 요가수업을 위해 인도에 머물고 있는데 한국식품을 살겸 시내에 나오면 이 식당을 찾는다고 한다. 대화중에 나를 어디선가 틀림없이 본 것 같다며 기억을 더듬으며 고민을 몹시도 한다.
가끔 이런 분을 만나면 난처해 지곤 한다. 살다보면 어쩌다 한 번쯤 지나친 일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숱한 큰 인연, 작은 인연들. 나는 전생의 어떤 공덕으로 이 인연들과 마주하고 있으며, 또 이 생애에 어떤 업을 쌓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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