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인도로 가는 길(기행15-5) - 인도 속의 작은 티벳, 다람살라(맥그로드 간즈) 6

양현재 사색 2012. 4. 15. 23:15

이번 여행길에 오른지 벌써 보름째다. 오늘 오후 코라에 동행을 한 일행들과 숙소인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였다.

오늘 밤은 이곳 다람살라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번 북인도여행길의 마지막 밤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사람의 마음을 매우 애절하게 만드는 서글픔과 같은 것이다. 지난 시간들이 또 하나의 낡은 추억으로만 남아 삶의 모퉁이가 될 것 같은 그런 아쉬움때문일 것이다.

 

네가 떠난 자리에는

고독만 가득하고 

슬픔은 고개를 내밀고 다가오는데

내 가슴에 홀로 키워온

사랑은 또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아, 북인도....

 

일행들의 마음도 내 맘과 같은지 이 슬픔같은 안타까운 이별의 시간을 잊으려는듯 저녁만찬의 테이블에는 왁자지껄하니 과장된 몸짓이 결코 어색하지 않았다. 킹피셔(Kingfisher) 맥주의 쌉쌀한 뒷맛이 수줍은 감성을 마구 자극해 오고 그렇게 다람살라의 달콤한 밤은 깊어만 간다.

떠나면 오지 않을 시간들, 깊어만 가는 어둠 속에서 그 시린 가슴의 허전함을 걷어내고, 시간의 흐름마저 잊어버리고, 온몸에 전율을 느끼도록 무지하게 행복해지고 싶은 오늘 밤이다. 

 

어느덧 창문밖이 환하게 밝은 아침녘에서야 잠을 깼지만 오늘은 마냥 게을러지고 싶었다. 적당히 포근한 침낭속으로 다시 파고들었다.

찬란한 아침!

손을 맞잡은듯 마음에 담아놓은듯 다정한 흔들림에 가슴이 마구 떨린다. 목멘 그리움 속에 내 안에 살고 있을 너를 어떻게 하란 말인가?

 

룸메이트와 호텔방에서 간단한 요기로 늦은 아침식사를 때우고 밖에 나오니 이슬비가 촉촉히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다람살라 동쪽에 있는 산간마을인 박수 나트(Bhagsu Nath) 외곽에 있는 박수폭포(Bhagsu Fall)를 찾아 나섰다. 오늘 일정상 그다지 서두룰 일도 없어 소풍삼아 그곳까지 걸어가기로 하였다. 밤새 내린 비로 도로 곳곳이 패이고  물이 고여있는데다가 좁은 길로 오토릭샤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오고가는 바람에 신경이 쓰이기는 했지만, 동료와 함께 우산을 받쳐들고 지난 보름여간의 여행길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을 더듬으며 걸으니 아주 낭만적이다.

 

짙은 운무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산 아래 마을을 내려다 보며 걷자니 우리가 마치 구름위에 올라와 있는 신선이나 된듯 싶다. 오늘은 날씨탓에 박수폭포구경은 힘들겠다고 마음을 정리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홀연히 운무가 걷히며 산줄기를 타고 내리는 박수폭포의 하이얀 물줄기가 아스라히 그림처럼 시야에 나타났다. 와! 자칫 놓치고 말뻔한 빼어난 광경을 마주하니 이번 여행이 우리에게 행운의 길이 될것만 싶었다.

 

늘 밝은 마음을 갖고 있어 이번 여행길에 내게 좋은 말 벗이 되어 준 동료가 오늘은 눈에 띄게 말수가 적어진 것 같다. 뜬금없이 이곳 어디메쯤 바위틈에 정자 하나 지어 보겠단다, 눌러 살련다고... 그런데 말투가  자못 진지하다. '정자만 있으면 어떻게 먹고 살거냐?'고 웃어 넘기려니 지금 수중에 있는 돈으로 어지간히 버틸 수 있지 않겠느냐며 짐짓 돈까지 꺼내 보인다. 어린아이처럼 참 순수한 분이다.

 

만남!

그 얼마나 가슴 설레고 벅찬 축복인가

그 얼마나 신비롭고 기막힌 운명인가?

 

인도에 한 번 왔다가면 반드시 또다시 찾아오게 되는 묘한 마력이 있다더니, 사실은 나도 이미 반쯤 인도병에 걸려 있었다. 

 

 

소풍겸 가볍게 마음먹고 나선 길이었지만 반나절동안 계속 걸었다. 그래도 벗과 함께 하니 시간가는줄 모르게 편안하였다. 오늘 산책길이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 오늘 저녁 델리(Delhi)로 돌아가는 버스를 탈 수 있게 배낭짐을 제대로 단단히 꾸린 뒤에 호텔 체크-인 데스크에 맡겨 놓았다.

 

다른 일행분들과 시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습기가 높은 계절때문인지 식당 테이블까지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고 위생상태가 영 형편없었다. 식사를 절반도 채  마치지 않았을 즈음에 어느 여성 한 분이 테이블 옆에 있는 벽면에 바퀴벌레 알이 허옇게 쌓여있는 걸 발견하고는 '꺄악!'하고 소리를 지르며 기겁을 하는 바람에 모두들 자리를 털고 일어서 나오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식당종업원인 아직 앳된 티벳 젊은이는 이런 것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는듯 서양 여행객 여자애와 테이블에 앉아 로맨스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갑자기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 왔다. 조국을 떠난지 50년이 넘어서면서 벌써 3세대까지 내려온 이들에게 부모세대의 조국 광복에 대한 절절한 꿈은 어떤 의미로 다가서고 있을까?

 

오후들어 서면서 날씨가 많이 화창해 졌다. 호텔에서 남걀사원에 이르는 길 주변에는 티벳인들이 운영하는 기념품 판매 노점이 몰려 있고, 분위기 좋은 커피점들도 많다. 이 가운데 커피 톡(Coffee Talk)이라는 자그마한 커피숍에 들어갔다. 커피 한 잔에 40루피 정도이니 이곳의 일반 물가에 비해서는 확실히 비싼 편이지만, 직접 갈아주는 커피의 향과 신선함은 그 값어치를 하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밖에 놓여있는 테이블에 앉아 오가는 여행객들과 눈을 맞추며 여유로운 미소를 나누는 것도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다.

 

나는 동료들이 커피를 마시는 사이에 잠시 시간을 내어 집사람과 두 딸에게 줄 기념품을 사러 다녀왔다. 티벳 전통 꽃문양이 수 놓여진 수제 헝겊 어깨가방 3개를 샀다. 아무리 짧은 출잘길이라도  항상 챙겨오던 습관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가족은 아직도 여름, 겨울 한차례씩 가족여행을 빠뜨리지 않고 있고, 적어도 크리스마스와 가족들 생일날은 모두 함께 모여 카드와 선물을 주고받고 있으니 여간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애들이 어렸을적 영국에서 살 때부터 해 오던 일이니, 그래서 우리 가족에게 영국이란 나라는 가족애를 발현시켜주는 특별한 의미라 하겠다. 

 

 

 

 운무속에 언뜻 모습을 드러낸 박수폭포

 

 

 

 

 

 *박수폭포의 힘참 물줄기가 계곡아래까지 이어진다

 

 *박수폭포 아래에 있는 박수나트 마을; 빗속이지만 수영장에는 수영을 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이 즐겁다

 

 

 *박수폭포 다녀오는 길에 운무가 걷히며 내려다 본 산 아랫마을 정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