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리는 월요일. 한창 봄꽃들이 자태를 곱게 뽐내고 있는 풍광이 이 봄비로 인해 사라질까 조바심이 앞선다. 아직 봄꽃 놀이도 나가지 못했는데. 그리도 춥고 지리하던 겨울을 이겨내고 어김없이 찾아온 이 아름다운 계절의 사신들이 그저 고맙고 대견하기만 하다. 이들을 어찌 그냥 이 봄비와 함께 떠나보낼 수 있으랴. 주말에는 가까운 곳이라도 나들이를 해야겠다.
오늘 학생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Harvard대학의 Michael Sandel교수의 정의(Justice)에 관한 강의는 이 대학이 자랑하는 명품강의 중의 하나다. 무엇이 이 강의를 명품강의로 만든 것인가? Sandel교수의 열정과 수준높은 지식을 우선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존 롤스에 이르는 시대를 넘나드는 철학적 논쟁들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 학생들을 몰입하게 하는 강의기법. 나는 이번 학기 개강전에 EBS에서 방영한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솔직히 그 충격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또 하나 나의 눈을 끌어댕긴 것은 학생들의 진지함, 막힘없는 자유토론 그리고 이를 가능케 했을 학생들의 엄청난 사전 학습량이었다. 그래서 명품 강의는 결코 교수 한 사람만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 교수와 강의실의 학생들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이었다. 교수는 학생들로 하여금 강의에 몰입하게 하고, 공부하게끔 이끌어 주는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학생들은 교수로 하여금 연구하고 준비없이 강의에 임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감시자, 독려자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 대학은 그야말로 교수와 학생들의 야합장이 아닐까?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할 의사가 없으니 교수는 게으르고, 교수가 강의에 소홀하면 학생들은 오히려 즐거워 하고. 이런 분위기가 상호 상승효과를 만들어 내니 한학기 중 한 과목의 수업분량 중 얼마나 강의가 진행되었을까? 맨날 서론(introduction) 부분만 끄적이고 잘 해야 교재의 절반 정도에서 끝마치곤 하는게 일반적 현상이 아닐까? 그러니 10위권이니 G20니 하는 국가의 위상과는 뒤떨어져도 한참 뒤쳐진 우리 대학의 수준이 아니던가? 문제는 이런 현상이 조만간 더 나아질 것이라는 가망도 크게 보이지 않으니, 앞으로 우리 젊은이들은 글로벌 경쟁 세계에서 어떤 경쟁력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 카이스트대학에서 학생, 교수들의 연쇄 자살로 촉발된 이 대학의 개혁운동에 대한 비판적 논쟁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어떠한 이유에서이건 아까운 생명들이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하도록 몰아간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 대학의 개혁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계속해서 추진되지 않으면 안될 필연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문제가 결코 감성적 판단에 치우치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지금까지 진행해 온 카이스트대학의 개혁을 위한 몸부림에 힘찬 갈채를 보내고 싶다. 지금의 시련도 잘 극복해 내고 더 튼실하게 성장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나는 내 위치에서 우리 대학에 최고의 명품강의 한과목은 반드시 만들어 볼 것이다. 그 첫 단추가 이번 학기에 이미 시작되었고, 나는 희망을 보았다. 이 일은 우리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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