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일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안네 소피 무터의 내한 공연을 관람했다. 지난 2008년 이후 3년만에 우리나라를 다시 찾은 것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모짜르트 협주곡 3번과 5번을 통해 애정을 키워 온 무터가 우리 앞에 섰다. 무터의 이미지대로 S라인 몸매를 여실히 드러내는 황금색 드레스는 그 색상이 주는 따뜻한 느낌때문에 이번 연주 곡목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 보였다. 지난 번 내한 공연 때는 블랙드레스였다고 한다. 당시의 연주곡목이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BWV 1042와 비발디 사계였다고 하니까.
팜플렛에 나온 인터뷰 형식의 자료에 따르면, 이번 내한 공연의 주제는 '다양성'이라 한다. "드뷔시의 소나타 g단조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예요. 이번 곡은 드뷔시가 작곡한 마지막 곡에 속하는데 곡의 섬세함과 다채로움은 한 평생 연주해도 끝없이 새로운 것을 드러내 바이올린으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게 해 줄 정도로 최고조에 이릅니다. 모짜르트의 KV 454는 모짜르트 사이클의 걸작이고, 이 중 한 곡만 선택해야 한다면 대부분 이 작품을 선택하지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소나타 F장조는 최근에 저의 레퍼토리에 포함되어 있는데요, 앙드레 프레빈 경과 함께 녹음한 바 있고, 아주 신이 나도록 활기 넘치는 음악입니다. 한여름 밤의 꿈의 마지막 악장과 매우 흡사하게 아름다운 선율, 깊이있는 로맨티시즘과 불꽃놀이 같이 화려한 기교로 가득하죠. 그리고 저녁을 마무리해 주는데 카르멘을 빼 놓을 수 없지요".
1976년 13세의 나이에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로 국제무대에 첫 발을 내디디며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으로부터 "최고의 음악적 재능을 지닌 바이올린 신동(Wunderkind)"이라는 극찬을 받은 무터는 35년간 60개가 넘는 음반을 발매하며 "바이올린의 여제"로 우뚝서 있다. 거장 카라얀이 세상을 뜨기 전 13년간 각종 음반 제작과 공연에 늘 함께 했던 바이올리니스트다.
1963년생이니까 금년 48세다. 35년간 세계 최정상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명성을 지켜오고 있지만, 그녀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23세에 70대 첼리스트와 사랑에 빠져 이듬 해 아이를 낳았고 1995년 사별 후 2002년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과 재혼을 했지만 4년 뒤에 헤어졌다. 현재는 싱글맘으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숨가쁜 연주일정을 소화해 내고 있단다. 이런 굴곡의 인생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역시 음악이라며 담담하게 성숙한 내면을 드러낸 말이 대가로서의 면모를 짐작케 한다. "인생은 계획하는 도중에 일어난다" 이것은 제 삶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똑같다고 생각해요. 일단 무대에 오르면 그 순간 겪고 있는 그 어떤 어려움이나 문제도 절단해 내야 합니다. 물론, 두 아이를 둔 싱글맘으로 완벽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늘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또한 제 삶을 풍부하게 해 줬어요. 한 인간으로서 겪는 모든 일들은 내적 성장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고, 결과적으로는 연주에서 드러나지요. 그렇다. 삶의 고난은 우리 인생을 피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면의 깊이를 풍부하게 만들고, 그런 경험이 인생이라는 무대를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이날 공연은 합창단석까지 다 채운 것을 보니 2500석 전체가 거의 매진된 모양이다. 이 만큼의 명성과 경력을 가진 연주자를 언제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거금을 투자했다.S석 E블럭3열7번 좌석, 15만원.늘 함께 하던 만울님은 이번 만큼은 사양했다. 혼자서만 관람을 하니 미안한 마음이 컸다. 음반을 통해 가졌던 빈틈없는 정치성은 다소 떨어진 듯 했으나 이것도 현장의 실 공연관람만이 가질 수 있는 긴장감이라 생각한다. 피아노 반주자 램버트 오키스와는 1988년 이후 오랫동안 연주의 동반자로 호흡을 맞추어 왔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오키스의 피아노 반주는 철저하게 무터의 조연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러나 드뷔시의 바이올린 소나타의 경우는 이런 조화가 이 곡의 본래의 의도와는 다른 시도였지 않았나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나타 곡이기 때문에 여왕의 음악세계와 품격의 깊이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한 여인의 사랑과 생애를 바로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각별한 무대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관중의 호응도 대가를 대접하기에 적절했고, 4번의 앵콜을 즐거이 받아 줄 만큼 무터도 한국 팬들에게 친절했다. 특히, 공연 후 팬 사인회에서는 피곤한 표정이 역력한데도 불구하고 거의 1시간 이상의 추가 시간을 할애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긴 줄 끝머리에 서서 기다린 끝에 팜플렛 표지에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 오래 서 있자니 멋적기도 했지만 기다린 만큼 기쁨이 컸으니 잘 한 일이잖는가? 2008년 공연 때와는 달리 악장이 끝날 때 박수를 치는 낯뜨거운 실례는 많이 줄어든 것 같았으나, 서울시내 기침환자를 예당에 모두 뫃아 놓은듯 중간중간 기침소리는 신경을 몹시 거슬리게 했고, 마지작 앙콜곡인 찌고이네르바이젠 연주시 터진 핸드폰소리는 너무 짜증나고 부끄러웠다. 이번 공연때 무터는 무대에서 관중석의 왼쪽을 응시하며 내내 연주를 했는데 내가 앉아있는 E블럭에서는 연주자의 얼굴표정을 똑바로 쳐다 볼 수 있어 늦게 예약해서 1층 구석에 간신히 자리를 잡은 내게는 큰 행운이었다. 사인을 받으려고 왔다 갔다 하는데 막내 처남 박완규교수 댁이 먼저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지난 번에도 이곳에서 처남부부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세상 참 좁은 것 같다. 소아과 의사인 처남의 댁은 오늘은 친구와 함께 왔단다. 어디를 가나 알아보는 사람이 많으니 항상 몸가짐을 단정히 해야 할 것이다. 집에 돌아오니 어느덧 자정이 가까웠다. 늦은 시각이지만 라면 2개 끓여 국물은 버리고 면만 건져 먹었다. 무터양에게는 죄송스런 일이다. 내 두 귀는 오늘 밤 이토록 분에 넘치는 호강을 했건만 뱃속은 라면으로 채우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