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내없는 하루

양현재 사색 2011. 5. 1. 01:11

만울님이 여행을 떠났다. 새벽부터 이 옷 저 옷 입었다 벗었다 부산하다. 내게 까지 와서는 이 옷이 이쁘냐, 저 옷이 이쁘냐며 의견을 묻는다. 내가 봐서는 둘 다 아닌 것 같아 눈을 내리깔고 딴청만 부리며 묵묵부답으로 대신한다.  이런 나를 두고 "남편이라고 전혀 도움이 안되요" 하며 끝내 한 마디 펀치를 던진다. 이럴 때는 무응답이 상수다.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평창에서 펜션을 운영하며 살고 있는 친구네를 방문한단다. 오랫만에 여자 친구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들뜰 만도 할 것이다.

 

사무실에서 늦으막하니 집에 돌아오니 둘째 딸 승희만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 보온밥 솥에 있는 밥을 퍼 참치캔을 반찬으로 늦은 저녁을 먹다. 승희가 계란 후라이를 만들어 준다. 오랫동안 냉장고에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맥주 한 캔을 따서 반주를 겸하니 그럭저럭 먹을만 하다. 나는 집에서는 웬만해서는 술을 찾아서 마시는 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쇼핑길에 사서 냉장고에 채워 둔 맥주는 한 달 이상이나 그대로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어쩌다 와인 한병을 따서 절반정도 마시고 병마개를 닫아 보관해 놓더라도 결국 시일이 지나서 그대로 싱크대 하수구에 쏟아 버리곤 한다. 술을 밖에서 배워서 그럴까?

 

늘 빡빡한 직장생활이 몸에 밴 내게 금요일 저녁은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느긋하게 밥상앞에 앉아 VJ특공대라는 TV프로그램을 즐기며 저녁을 먹는다. 아마 우리 아이들은 뒷날 이런 내  모습을 떠 올리며 나를 기억할 것이다. 별로 품위있는 모습은 아닐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전국의 맛집들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는데 이것을 보고 있자면 그곳에 꼭 가 봐야할 것 같은 유혹을 받곤한다. 그 음식점에 나오는 손님들은 한결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그 집의 음식 맛을 자랑하며 세상에 더 이상 행복한 가족은 없다는 표정을 한껏 지어 보이곤하는데, 이를 지켜 본 만울님은 그럴 때 마다 '저 사람들은 걱정거리도 없나봐', '돈도 많지'하면서 시샘인지 아니면 나 들으라는 소린지를 해 대곤 한다. 요즈음에는 이 프로그램에 세계의 관광명소를 소개하는 코너까지 생겨서 만울님의 코멘트가 하나 더 늘었다. '우리도 언제 저 곳에 한 번 갑시다, 언제 갈까요?'.

 

나는 잠시 만울님의 얼굴을 떠 올려 본다. 저녁은 먹었을까? 날이 흐려서 아쉽게도 그곳에서도 오늘 밤 별을 볼 수는 없겠지? 핸드폰으로 문자를 띄운다. '내 꿈 꾸지 말고 좋은 밤 되숑!'. 내일 새벽 골프가 있으니 일찍 잠을 청해야 하겠다. 낮은 베개 높이 베고.....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우머치자동차보험  (0) 2011.05.03
황사경보발령  (0) 2011.05.01
선정릉의 봄  (0) 2011.04.29
북창동  (0) 2011.04.29
주례사 - 신랑 윤태모 군/신부 허미란 양  (0) 2011.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