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에서의 숙소인 Hotel Khayul에의 도착은 예정보다 지연되긴 했지만 그래도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한 것은 다행이었다. 새벽녘 출발한 사추(사실 사추에서는 씻지도 못하고 하루 밤 잠만 자고 지나친 셈이니 마날리를 출발한 때부터라고 해야 할 듯 하다)에서 부터 황량한 사막지대를 이틀씩이나 걸려 지나오면서 심신은 지칠대로 지쳐있었고 거기다 모래먼지까지 온통 뒤집어 쓴 상태기 때문에 샤워라도 제대로 하고 짐도 정리를 하려면 그래도 날이 훤할 때가 마음이 훨씬 편하고 느긋하기 때문이다.
레는 연평균 강수량이 84mm 밖에 안되는 극도의 초건조지역이어서 물사정도 안 좋거니와 입술이 트는 것은 물론 손, 발바닥, 얼굴 피부까지 갈라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호텔방에서의 손빨래는 제발 자제해 달라는 길잡이, 타타씨의 간곡한 당부가 있었다. 전기 사정은 다른 라다크 지역보다는 나은 편이라고 하지만 인도 평균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어서 이곳에 머무는 동안 전기가 예고도 없이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인내를 갖고 잠시만 기다리면 다시 전기공급이 재개되어 그다지 큰 불편은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이 핑계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게 되었으니 그리 나쁠 것도 없었다. 입술트는 건 피할 도리가 달리 없었는데 이런 환경탓에 인도에서는 "립밤(Lip Balm)"이라는 천연원료로 만든 입술에 바르는 연고제(립스틱)가 생산되어 여행객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았다. 부피도 작고 가격도 저렴하여 귀국할 때 가벼운 선물용으로도 제격일 듯 싶었다.
그동안 밀어두었던 빨래감을 한데 모아 호텔에 세탁서비스를 부탁하고, 이동중에 건조가 안 된 축축한 옷가지들은 베란다에 널어 놓았다. 이런 부산을 떠는 모습이 영낙없이 사막을 헤메다가 오아시스를 만난 격이다. 샤워까지 마치고 나니 몸이 날아갈 듯 하다. 호텔 숙소동 앞 정원에는 꽃들의 향연이 한창이다. 코스모스가 새삼 반갑고 들국화는 더욱 예쁘다. 정원뜰에 놓인 파라솔밑에 이리저리 둘러앉아 한가롭게 맑은 공기와 햇살을 즐기며 한담을 나누니 그간의 고생은 씻은듯이 사라지고 오랫만에 사람사는 모습을 찾은 것 같다.
이번 인도 여행길에는 어디를 가건 우선 식수를 조달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현지인들은 수돗물을 마셔도 별 탈이 없다지만 우리들은 여행 전부터 물조심을 해야 한다는 주의를 하도 많이 들었던 터다. 델리에서 우리 일행에 합류한 젊은 여성 한 사람은 수인성 배앓이로 앞선 일정을 조정하여 델리 현지에서 며칠간 물 한모금도 마시지 못하는 생고생을 한 뒤에야 간신히 우리들과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동 중에 마실 물도 그렇고, 숙소에 도착해서 라면을 끓여 먹거나 차라도 한 잔 끓여 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식수를 구입하는 일부터 해결해야 했다. 보통 플라스틱병에 담긴 생수를 구매하는데 각 지역별로 로컬 브랜드들이 있어 지방에서는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유명브랜드의 생수를 구입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질적 차이가 있을 것 같았지만 대안이 없으니 그저 믿고 사 마시는 수 밖에 없었다. 가격은 1통에 Rs 25(625원).
호텔은 쇼핑가 중심에 있어 잠시 걸어 나가면 생수나 이 지역의 과일등 생필용품들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우선 급한대로 생수부터 구입한 뒤 저녁거리를 준비했다. 먼지를 잔뜩 먹은 목을 씻어내는 데에는 역시 김치라면만한 게 없다. 여기에 고추장만 약간 풀어 넣으면 군복무 시절 먹던 추억의 그 맛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간의 생활로 한결 익숙해진 손놀림으로 주위 분들과 함께 금방 뚝딱 라면을 끓여 나누어 먹으니 꿀맛이 따로 없다. 라면은 역시 이렇게 여러 사람이 둘러 앉아 나누어 먹을 때 한계효용이 최고치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 김치 한 점만 있으면 더 바랄게 없을텐데..." 배까지 불러 행복에 겨우니 흰소리로 좌중을 웃기기 까지 한다.
저녁식사를 마친 뒤 동료와 함께 레 구시가지 산책을 나섰다.
인간이 상주하는 도시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알려져 있는 오아시스 도시(해발 3,358m) 레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히말라야의 자연과 사람을 한없이 끌어당기는 매력을 지닌 전통 라마교 문화, 그리고 척박한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순박한 공동체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시내에 위치하고 있는 레왕궁을 위시하여 도시 곳곳에는 이름난 곰파(라마교 사원)들이 즐비하다. 길을 가다 보면 도로변이나 마을 입구에는 초르텐(Chorten)이라 불리는 흰색의 불탑들이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늘어서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초르텐은 탑모양의 조형물로 인도의 수투파(Stupa)가 변형된 것으로서 마을의 안녕과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마을 입구나 언덕 위에는룽타(Lungta)라고 하는 5색(흰색; 구름, 파랑; 하늘, 노랑은; 태양, 초록; 대지, 빨강; 불을 의미)의 깃발들이 하늘 높이 펄럭이는 모습 또한 아주 이국적이다.
거친 대자연을 마주한 인간은 자기 싦의 유한성과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소망을 담아 이처럼 수많은 신들의 모습을 그려낸 것일까?
이런저런 상념을 안은 채 걷는 사이에 주위는 어느새 어둠이 깔렸다. 상인들은 서둘러 좌판을 정리하는데 길가에는 돌아갈 곳 없는 개와 소들만 한가롭다. 기이한 공존이다. 사람이나 동물 서로가 상호 지극히 무심할 뿐이다.
힘들여 찾아온 이곳, 싱그릴라에서의 첫 날은 이렇게 저물어 가지만, 그리하여 이 밤은 쉽게 잠을 아룰 수 없을 듯 하다.
*Khayul호텔의 전경, 우리 일행들이 정원에 모여 한담을 나누고 있다
*레 시내 와곽의 풍경
*곰파를 오르면서 쉼없이 기도하는 현지인 가족 일행
* Shey 곰파에서 내려다 본 레 시외 풍경
* 샨티 스투파에서 내려다 본 레 구시가지 풍경
해발 3,358m의 고원 도시, 레 구시가지 - 구름의 그림자가가 시가지를 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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