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인도로 가는 길(기행6) - 우리들의 샹그릴라, 레(Leh)를 향하여

양현재 사색 2011. 9. 5. 17:58

밤새 차가운 바람이 그르렁대며 텐트를 흔들어 댔지만 히말라야 초원의 밤은 너무 아늑하고 따뜻했다.

 

레까지 가려면 어제 달려 온 만큼의 거리(225km)를 더 가야만 한다. 다만 어제보다 높은 5,000m급의 고산들을 줄줄이 넘어야 하지만, 그래도 하루 동안 적응훈련을 한 셈이니 이겨낼 수 있으리. 출발에 앞서 어제 고산병으로 고생을 한 팀동료와 홍삼차와 미숫가루 한 잔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타이레놀도 한 알씩 나누어 먹으며 마음을 다져본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로 어둠을 밝히고 모두들 부지런히 차에 짐을 싣는다. 먼 길을 가자니 자연히 이런 부산함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이곳으로부터 해발 5,065m의 Lachlung -la까지는 800m의 높이를 계속 치고 올라가는 길이다. 이 후  500여 미터를 내려온 지점인 Pang(해발 4,530m)부터는 모리 대평원(Morey Plains)이 전개된다. 모리 대평원은 Pang으로부터 해발 5,360m의 Tanglang-la까지 무려 125 평방킬로미터에 이르는 광활한 고원지역이다. 깍아지른 듯한 준령이 다른 별세계와 같은 황량한 풍광을 연출하다가 어느 순간 이런 고원지역이 나타나면서 척박한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는 유목민들이 보이곤 한다. 인간의 생명력은 이렇게도 질긴 것이다.    

 

이렇게 레까지 이어지는 험하고 지루한 지역을 지나다 보면 어느덧 마음이 초조해진다. 연신 지도를 들여다 보며 차내에 있는 동료들에게 레까지 남은 거리를 수시로 알려주며 용기를 북돋운다. 우리 운전기사도 이런 마음을 헤아렸는지 오디오의 볼륨을 높인다. 라다키음악이다. 차창에 비치는 이 황량한 풍광과 썩 잘 어울리는 음악이다. 어딘가 애잔한듯 하면서도 경쾌한 리듬, 테이프 속 가수의 높은 옥타브가 이국적이지만 정겹다. 음악을 좇다보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무릎을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게 된다. 

 

다행히 주봉인 Tanglang-la를 지나면서 부터는 내리막 길이다. 그래봤자 3,500m급으로 여전히 고산지대이지만 4 ~ 5,000m급을 넘어 온 정복자들에게 이 정도는 뒷동산급이지 하며 객기까지 부려 본다. 고산병 증세에 시달린 몸도 거짓말처럼 회복되가는 느낌이 들면서 마음도 한결 가벼워 진다. Upshi에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한다. 여기서는 레까지 불과 48km밖에 되지 않으니 1시간이내에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산 머리 곳곳의 곰파(티벳 사원)들이며 파란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으며 휘날리는 룽타(Lungta), 길가의 하얀 라마탑들의 모습이 차창밖으로 지나가며 힘든 여정을 달려온 우리를 반겨 주는 듯하다.

 

드디어 레에 입성이다. 티벳고원과 이어져 있는 라다크지방의 최대도시인 레는 해발 3,400m에 위치하고 있다. 라다크는 역사적으로 티벳에 속해 있었는데, 10세기경 티벳 제국의 일부가  이 지역으로 건너와서 세운 왕조가 라다크 왕국이었고, 이 왕국은 약 900년에 걸쳐 이 지역을 다스리게 된다. 이런 역사적 특성 때문에 라다크는 '작은 티벳'이라고 불리고 있고, 많은 라다크인들은 자신들을 인도인과 구분하여 '라다키'라고 부르면서 그들의 정체성은 티벳 역사 또는 티벳 불교문화라는 의식이 매우 강하다. 지리적으로는 티벳 고원과 인도 대룩사이에 놓여 있기 때문에 남부 실크로드의 중간기지로 인도와 중앙아시아 나라들간의 교역의 중심지였고, 특히 라다크의 수도인 레는 이 지역을 오가는 상인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종착지와 같은  구실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가 속한 라다크는 80%가량이 해발 3,000m 이상의 고원지대로 일년 중 6월 ~ 9월초를 제외하고 나머지 기간동안은 빙하때문에 육로가 완전히 차단되어 외부로부터 고립되는 지역이다. 물론 델리에서 레까지 운항하는 항공편이 있기는 하나 이 지역 날씨가 워낙 들쑥날쑥해서 하루 이틀은 예사고 심하면 한 주일 이상 결항되기도 한다. 거기다가 델리에서 레까지 비행기로 이동하는 경우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고산병에 시달리게 된다. 타타씨 말로는 언젠가 우리나라 불교관계자들이 비행기편으로 레까지 왔다가 공항에 내리자 마자 전원 곧장 병원으로 실려간 일이 있었단다.

 

이처럼 어지간해서는 여행자들이 찾아갈 엄두도 못내던 곳이었으나 스웨덴의 여성 인류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라다크에서의 다년간의 생활을 바탕으로 쓴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라는 책을 통해 그 이름이 외부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책에서 전통생활을 지켜온 라다키들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

- "모든 사람들이 우리처럼 행복하지 않단 말입니까?"

- "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화가 난단 말인가요?"

- " 왜 많은 물건을 만들어 놓고도 풍족하지 않다고 생각하시오?"

이번 여행길에서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보다 근본적인 가치들은 무엇일까를 찾아보고, 이것들을 통해 나의 삶을 보다 의미있게 만들기 위하여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한 번 그려보아야 겠다.

 

파랗다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이 안되는 하늘빛, 일필휘지로 휘갈긴 것 같은 히말라야산맥의 웅장함, 고유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불교사원의 한량없이 평화로운 모습으로 여름철 인도여행의 중심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레는 이렇게 신비함을 간직한 채 우리를 맞아 주었다.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의 작품(1937)을 영화화한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en)"은 히말라야 산 중에 있는 라마교 사원공동체를 신비의 낙원(유토피아), "샹그릴라(Shangrila)"로 그리고 있다.  레에 도착한 나는 마날리에서 이곳까지의 그 고된 여정이 결국 이 샹가릴라를 찾기 위한 아프락티스였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3박4일간 머물게 될 호텔인 Khayul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것이 헛된 생각만은 결코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예감을 갖게 되었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황량한 벌판 

 

 

 

 

 

 *어쩌다 만나게 되는 휴게소 - 짜이(인도 전통차, 밀크 티) 한 잔으로 건조해진 마음을 적신다

 

 

 * 식수(drinking water)라고 쓰여진 드럼통이 이채롭다.

 

 

 *바람에 휘날리는 룽타(Lungta), 불경 속의 말씀이 거센 바람을 타고 저 황야를 지나 히말라야의 준봉들을 넘을 것이다

 

 

 

 

 *Upshi (해발 3,400m)에 도달 - 어느덧 고생의 끝이 보인다. 레까지는 49km

 

 

 *도로 표지판; 이 황야를 묵묵히 지키고 서 있다 

 

 

 *중간 평원지대에서 만난 라다키들이 물건을 흥정하고 있다. 인도인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이목구비 

 

 *쓸쓸한 도시에 개들만 한가롭다

 

 

 

 *드디어 우리들의 샹그릴라, 레에 도착 - 아름다운 호텔 Khayul의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