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인도로 가는길(기행 5) - 고행의 산길, 히말랴야의 품으로

양현재 사색 2011. 9. 3. 20:47

마날리에서의 추억을 간직한 채 이번 여행길의 하이라이트인 잠무 & 카슈미르를 향해 출발이다. 인도 대륙의 북부 잠무 & 카슈미르주를 진입하기 위하여는 두 갈래 길이 있는데, 하나는 델리에서 서북쪽의 맥그로드 간즈(McLeod Ganj)를 거쳐 잠무(Jammu), 스리나가르(Srinagar) 레(Leh)를 순회하는 길이 있고, 다른 하나는 델리에서 동북쪽의 마날리(Manali)를 거쳐 레, 스리나가르, 잠무를  돌아보는 길이 있다. 우리 일행은 마날리를 전진기지로 하여 J & K주로 들어가는 두번째 길을 택한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노선을 택한 것은 잘한 일이 되었다. 그것은 스리나가르에 도착했을 때 이 지역에 마침 예기치 않은 폭우로 스리나가르에서 레에 이르는 도로가 유실되고 차량, 인명이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는 소식을 현지 신문을 통해 확인했기 때문이다. 다람살라에서 만난 우리나라 관광객 일행도 델리로 발길을 돌리는 모습을 보고 참으로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렵게 나선 여행길이 이런 천재지변으로 일정이 깡그리 망가지게 된다면 얼마나 속상한 일이 겠는가.

 

잠무 & 카슈미르(이하 " j & k")주는 동쪽으로는 티벳과 접하면서 라다크(Ladakh)지역과 카르길(Kargil),스리나가르, 잠무를 포함하는 광활한 지역이다. 지금은 중국이 실효적 점유를 하고 있는 중국령 카슈미르(Aksai Chin)와 파키스탄이 실효적 점유를 하고 있는 파키스탄령 카슈미르(Azad Kashmir)가 떨어져 나간 상태다.

 

 

 

8월6일 새벽 1시 50분 짐을 챙겨 집합. 아직 잠이 덜 깬 얼굴들이지만 이번 여행의 최고 난코스인 히말라랴의 고산준령을 헤쳐 넘어간다는 부담과 걱정에 긴장감은 숨길 수 없어 보인다.

 

오늘은 J & K주의 진입을 위해 히말라야산맥을 타고 중간기착지인 사추(Sarchu)까지 253km를 내달려야 한다. 워낙 길이 험한 산악지대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찝차를 이용해 이동하게 된다. 차는 3대 모두 11인승. 배낭이랑 무거운 짐들은 차량위에 싣고 차량용 덮개천막(호로)을 뒤집어 쒸운 뒤 밧줄로 단단히 고박을 한다. 운전수들의 손놀림이 야무지다. 우리를 싣고 레까지 장장 473km의 거리를 이틀간에 걸쳐 안내할 포터인 셈이다.  길잡이 말로는 12시간 후면 사추에 도착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16시간이상은 소요될 것으로 각오해야 할 것이다.

 

 *우리를 라다크로 인도한 기사3명, 우리들의 포터들 - 참 성실하고 순박한 사람들

 

 

'작은 티벳'이라 불리는 라다크는 세계에서 고도가 가장 높은 지역 가운데 하나로 고원과 깎아지른 아찔한 골짜기들이 즐비하다. 전 면적이 약 11만 7,000 평방킬로미터로 히말라야 산맥 서쪽의 라다크 산맥을 비롯해 카라코람 산맥과 인더스강 상류지역을 포함한다. 우리나라 남한의 총면적이 10만 평방킬로미터이고, 북한을 합쳐 총 22만 평방킬로미터이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아래 그림에서 보다싶이 마날리에서 라다크의 최대도시인 레까지 남에서 북으로 종단하는 길에는 4 ~ 5,000m의 고산준령들이 버티고 있다.

 

 

 

 

 

내가 탑승한 차량에는 젊은 여성들 4명을 포함하여 모두 9명의 일행이 배차되었다. 4명 모두 미혼으로 교사, 직장인, 사진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는데 한결같이 열심히 일하고 인생을 즐겁게 산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이들의 삶의 모습이 부럽고, 이들의 젊음이 싱싱하고 아름답다.

 

해발 3,980m의 로랑패스(Rohlang Pass)를 넘으면 본격적으로 히말라야의 품으로 들어선다. 차량은 어둠을 뚫고 앞으로 앞으로 전진이다.

칠흑같은 어둠 속 갖가지 상념에 빠져드는데 갑자기 한 일행이 내 손을 붙잡아 흔들며 외친다. "아, 별이다!"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에 구슬이라도 흩뿌려 놓은듯 밤하늘을 촘촘히 메운 별들이 가히 환상적이다. 이 얼마만에 만나는 별인가? 별똥 하나가 먹물같이 어두운 하늘을 가르다가 계곡 저 아래로 까마득하게 사라지는 모습을 망연히 바라본다. 별똥을 보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 진다는데 지금 나의 소망은 무엇인가?

20년도 지난 여름날 가족들과 충청도의 어느 산사로 휴가를 갔을 때 절 마루에 누워 바라보던 별, 그 감동을 두고두고 잊을 수 없어 종종 그 때를 그리워 하고, 또 순전히 그 아름다움을 다시 만나기 위해 몽골여행까지 꿈꿔 왔었는데 이 곳 히말라야에서 전혀 뜻하지 않게도 이런  값진 선물을 받게 될 줄이야. '아, 여지껏 내 가슴 속에 용케도 살아 남아 꿈틀대고 있는 내 열정이여, 순수여!'

 

차내에는 일순간 흥분과 감동의 물결이 일렁이며 왁자지껄 소란이 그치질 않는다. 아름다움을 대하는 이 보편적 감정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을 인간답도록 지켜준 소금이 아니었던가.

 

해발 3,500m를 넘어서면서 푸른 숲은 사라지고 풀 한포기 없는 황량하고 삭막하기 그지없는 고산지대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달려도 달려도 끝이없는 이곳 황무지의 그 광활한 스케일과 웅장함에 절로 머리가 숙여지면서 사람을 마냥 겸손하게 만들어 준다. 어쩌다 척박한 모래틈에 힘겹게 뿌리를 내린 풀이라도 한 포기 발견하면 절망속에서 한 줄기 희망이라도 찾아낸듯이 그 모질고 질긴 생명력이 그저 고맙고 신비로울 뿐이다.

 

4,000m를 넘나들면서 차는 계속 앞으로 달리는데 일행들이 하나, 둘씩 고산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해발 3,000m 이상의 고도에서 사람들은 무기력, 구토, 어지럼증, 두통, 다리나 발의 종창이 생기는 고산병 증세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대부분의 경우는 뭄이 스스로 회복을 해가지만, 우습게 보고 방치할 경우 심하게는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한다. 특히 갑자기 기침이 시작된다면 폐에 물이 차기 시작하는 폐수종의 초기증세이므로 반드시 낮은 곳으로 내려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번 여행길의 길잡이인 "타타"씨는 고산병의 징후로 사람이 사소한 언행에도 갑자기 짜증증세를 보이게 되므로 좋은 말만 하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할 것과 또  일행들 상호간에 언행을 조심해 줄 것을 당부한다. 가능하면 아예 말을 삼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밖에도 가급적 따뜻한 물을 많이 섭취하고, 걸을 때 보폭은 평소의 1/4정도를 유지하며 천천히 걷고 절대로 뛰지 말 것과 흡연, 음주도 삼갈 것을 권하고 있다. 하다 못해 도착지에서는 머리를 감지 말고, 힘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용변도 참을 수 있으면 참으라고 한다.

"타타"씨는 재미있는 비유를 한다. 감정이 고조되거나 빨리 걷는 경우 숨이 가빠지는데 고산지역에서는 이걸 '숨이 밀린다'라고 하여 이렇게 한 번 숨이 밀리면 평지에서 처럼 숨이 원래대로 회복되지 않고 곧바로 고산병증세로 이어진다고 표현한다. 또 하나 재미 있는 비유가 있다. 평상시에 '아, 타타씨 꽃미남이네요'하면 기분좋은 칭찬인데도 고산지역에 올라오면 '뭐, 내가 기생오래비라고?'하는 엉뚱한 해석을 하게끔 된다나. 서로 언행을 조심하라는 말인 듯 하다. 이곳을 9번이나 여행했다는 "타타"씨도 3번이나 고산병을 앓았다고 하니 고산병에는 남녀노소의 차이나 , 고산지역 여행 경험의 유무와 관계없이 무차별적으로 나타나는 듯 하다. 그 때 그 때 몸상태에 따라 찾아오는게 아닌가 싶다. 아직 고산병의 근본적 예방이나 치료 특효제는 알려진 게 없는듯 하다. 나는 출국에 앞서 비아그라를 처방받아 가져 갔지만 초기 증상회복이나 예방에 별 도움을 보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두통증세가 조금이라도 시작될 때 즉시 타이레놀을 복용하는게 도움이 되었다는게 많은 일행들의 설명이고 보면 이것이 보다 효과성에 신뢰도가 높은 듯 하다.

 

*이번 여정의 길잡이, 타타씨 - 인도인 처럼 보이지만 순종 한국사람. 여행이 좋아 이 길을 가고 있단다. 행색과는 달리 때묻지 않은 순박한 청년 

 

 

우리 차량에 탑승한 젊은 여성들과 일부 일행분이  드디어 고산병증세를 보이게 되었다. 다른 차량의 일행들 중에도 구토증세까지 보이며 매우 힘든 상황까지 가는 분들이 속출하였다. 고산병증세를 보이는 분들을 지켜보는 게 안타까울 지경이다. 좁은 차량, 불편한 좌석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며 차 바닥까지 몸이 착 가라앉으며 괴로워 하는 모습을 대하는건 차라리 고통이다. 그렇다고 내 몸도 편안한게 아니니 그저 물이나 권하고 말로써 위로해 줄 뿐이다.

 

*중간 휴게소에서 고산병에 시달리고 있는 일행들이 제멋대로 쓰러져 있다. 저 씩씩해 보이는 젊은이(사진가)도 지금은 웃고 있지만 잠시 후에는 상황이 전혀 바뀌어 있을걸

 

 

 

이토록 J & K에 진입하는 호된 신고식을 거치며 16시간의 장정끝에 피곤하고 지친 심신을 이끌고 드디어 중간 기칙지인 사추의 텐트숙박지(Himalayan Tourist Camp)에 도착한 때는 날도 이미 저물기 시작한 시각이었다. 텐트촌은 황량한 초원에 ㄷ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텐트는 호텔로 치면 2인실 정도의 규모로 제법 넓직하고 안에는 변기와 세면기를 갖춘 화장실이 침대와 연이어 바깥쪽에 설치되어 있어 그런대로 깔끔하다. 이곳에서 우리는 오늘 밤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 하룻 밤을 잔 뒤 새벽 일찍 다음 행선지를 향해 출발하게 된다.

 

 

 

*황량한 초지에 들어서 있는 텐트숙소

 

 

 

차량에서 짐을 내린 뒤 텐트내에 대충 짐을 정돈하고 나니 만사가 귀찮다. 그러나 오늘 이곳 텐트 숙박지의 내 룸메이트로 정해진 분이 고산병증세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다. 이곳 사추의 해발은 4,253m. 동료를 침대위로 들어 올린 뒤 우선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한편 목과 머리 주변을 정성껏 지압을 해 주고 안정을 취하도록 안대까지 해 주었다. 잠들었는지 의식이 없는 건지 꼼짝을 안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최소한의 어설픈 응급조치만 한 채 어찌 더 손 쓸 엄두를 못내고 망연히 서 있는데 마침 "타타"씨가 들어와 이 분의 상태를 살핀 뒤 핫팩을 조달해 주었고, 다른 일행도 달려와 이 분께 비상용 극약("공진단") 한 알을 입에 넣어 주고 나니 깊은 잠에 다시 빠져든다. 우선 한 숨 돌린듯 하다. 여행을 함께하는 일행들이 서로 돕고 걱정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감사하다. 환자에게 복용케 한 공진단은 사향, 녹용, 산수유, 당귀를 원료로 사용하여 제조한 것으로 겉 표면이 고급스럽게 금색으로 입혀져 특수용기에 낱개로 포장이 되어 있어 보기에도 꽤 귀한 약품임을 알 수 있었다. 옛날부터 기운과 혈액의 순환이 정체된 급박한 상황을 개선시켜주는데 특별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름을 들어보긴 했지만 실물은 이 날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자신을 위해 준비했을 이런 귀한 비상약을 주위 사람을 위해 선뜻 내놓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이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얼마나 지났을까? 저녁식사를 하라는 전갈이다. 이 때까지도 자리에 제대로 앉지도 못한 채 불안하게 천막내를 서성이던 나는 밥생각이 전혀 없지만 환자에게 따뜻한 죽이라도 먹이는게 좋겠다 싶어 무거운 몸을 움직여 동료를 깨워 본다. 다행히 동료는 어렵게 몸을 일으켜 죽 반그릇 정도를 비웠다. 이렇게 환자인 동료가 몸을 조금이나마 추스리자 이제 내게도 고산병증세가 나타났다. 몸을 숙이면 골이 쏟아질듯이 아프고 뒷목도 뻑뻑하니 온 몸에 맥이 빠지는 기분이다. 게다가 고산병증세가 이유없는 짜증냄이라더니 주변의 따뜻한 호의에도 궨히 벌컥 짜증이 나는게 아닌가. 알아서 할텐데 왜 이래라 저래라 간섭이냐는. 순간적으로 아차 싶었지만 이미 줏어 담을 수 없는 상황이다. 주위의 어색한 분위기를 느끼면서 나는 생각한다. 참, 별 일이다. 사람이 이렇게  옹졸해 지기도 하는구나. 마음을 다스리려고 텐트촌 주위를 산책해 보았지만 마음은 영 불편하였다.

 

숙소로 돌아와 잠들기 전에 서울에서 처방받은 100mg의 비아그라 한 알을 반으로 쪼개서 둘이 나누어 먹었다. 그런데 자르다 보니 2등분이 제대로 되지 않아 내가 좀 더 큰 것을 먹게 되었다. 이게 밤새 얼굴만 후끈거리게 하는 원인이 될 줄이야. '만사 불여튼튼'이라고 나름 대비를 한다고 한게 그런 결과가 되어 룸메이트에게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다.

 

*내가 머문 텐트숙소 #4

 

 

 

황무지를 넘어 이곳 초원까지 오는 오늘 하루 동안  참으로 색다른 경험과 숱한 일들을 겪은 것 같다.

로랑패스를 넘으며 우리를 감동시켰던 그 별무리들도 이곳까지 쫓아와 있을까?

주위는 적막하고 설산에서 몰아치는 차가운 바람소리는 더욱 높아만 가는데, 낯선 땅 사추 텐트에서의 한 여름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가고 있었다. 

 

*히말라야의 고산준령을 넘고 넘어. 저 멀리 설산도 보인다.

 

 

 

 

 

*파란 하늘에 걸려 있는 구름, 저 하늘 어딘가에 우리를 쫓아왔을 별무리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