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간송미술관 "풍속인물화대전" 관람(3)

양현재 사색 2011. 11. 1. 16:10

지난 10월18일(화) 간송미술관 "풍속인물화대전"을 함께 다녀온 친구 김승태의 후기를 여기에 옮겨 싣는다. 안문배와 더불어 친구들 사이에서 문객으로 그 명성을 인정받고 있는 두 사람의 글 앞에 나의 후기가 무색할 뿐이다. 두 사람 모두 나와는 차원이 다른 높은 수준의 글쟁이들이다.

 

                         나무꾼의 물음에 답하다 -간송미술관 관람후기


   어초문답[漁樵問答]이란 낚시꾼과 나무꾼이 묻고 대답한다는 뜻으로 성리학의 대의를 밝히는 것이며, 겸재 정선[謙齋 鄭善]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여러 화가들이 그림의 소재로 삼아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합니다. 친구로부터 초대받은 간송미술관의 '풍속인물화대전'을 소개하는 신문기사에서 접한 그 '어초문답도'가 며칠 전부터 내 머리에서 맴돌고 있었습니다. 물론 명리에 초연하게 하늘의 뜻에 따른 삶을 뜻하고 있다는 그 그림의 깊은 성리학적 내용은 내가 알지도 못할뿐더러 그것을 알고자함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그 두 사람이 나누었음직한 대화를 떠올려보다가, 짐작도 하지 못했던 함정에라도 빠지듯 물음 하나에 내 스스로가 걸려들고 말았습니다. 나무꾼이 낚시꾼에게 묻습니다. "그래, 선생께서는 세월을 좀 낚으셨는지요?" 나무꾼의 질문에 내가 대답할 차례입니다. “...................”

   

   가을은 여행길에서 돌아와 성북동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난 몇 차례 가을과 나의 성북동에서의 만남 덕에, 이제 나도 성북동에 가면 가을이 어디쯤에 있을 것이란 짐작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을은 걸어가는 길바닥에도 뒹굴고 길가 벤치위에도 앉아있는가 하면, 꽃가게 앞에 늘어놓은 화분위에서도 가을은 익어가고 있고, 또 어느 가을은 길가는 사람의 어깨에 올라타고 서둘러 어디론가 떠나고도 있습니다. 그 가을은 간송미술관 좁은 마당 한켠 노란 감국[甘菊] 속에도 스며들어 짙은 향을 풍기고 있었고,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의 얼굴에도 그 가을은 어김없이 미소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풍속인물화의 대표 자리 하나를 혜원 신윤복에게 내어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의 그림은 '조선의 모나리자'라고까지 표현하는 미인도[美人圖]를 필두로, 월야밀회[月夜密會]를 비롯하여 '달빛 어두운 깊은 밤,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이 알리라'[月沈沈 夜三更 兩人心事 兩人知]라는 야릇한 글귀까지 곁들여 놓은 월하정인[月下情人], 오늘날 말하는 소위 '야타족'의 뿌리라도 되는 듯 말 잔등 위에는 기생들을 올려놓고 자신들은 굳이 말고삐를 거머쥐고서 들놀이에 나서는 양반집 자재들의 모습을 그린 연소답청[年少踏靑]등 걸출한 그의 수많은 작품들은, 그 섬세한 묘사와 오늘날까지도 빛바래지 않은 색상의 생생함 등에 대한 놀라움에 더하여, 그림을 보는 이로 하여금 살아 꿈틀거리는 성적 호기심까지 불러일으키며 그림 속으로 빨려들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듯합니다. 그 미인도 앞에서 나는 갑자기 미인도가 간송미술관을 닮았다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라 남몰래 그녀와 미소를 주고받았습니다. 단아하고도 알 수 없는 미소 띤 얼굴 외에 볼 수 있는 그녀의 몸매라고는 들춰진 치맛자락 사이에 드러난 버선발뿐으로, 옷 속에 감춰져 있을 그녀의 아름다움은 상상으로밖에 알 길이 없습니다. 나의 그 조바심을 알아차리기라도 해서인지 그녀는 옷고름을 풀고 있는 중인지 묶고 있는 중인지 궁금증을 더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문화가 그러하듯이 풍속인물화 또한 국력의 흥망성쇠에 따라서 모방과 독창, 융성과 쇠퇴 사이를 오가며 흘러갔음은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겠지요. 겸재 정선에서 시작된 조선의 진경풍속화는 영정조 시대 김홍도 신윤복에 이르러 그 절정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었던 김홍도의 기우부신[騎牛負薪] 마상청앵[馬上聽鶯]등은, 마치 자신의 꿈이었을 신분 상승의 염원까지도 담은 자화상을 그려 보고자 시도했던 것은 아니었을 런지요. 삼라만상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 정점을 지나 사그라지는 것들에서 드러나는 어수선함과 스산함은 어느 것이고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국력쇠퇴기를 맞이하여서 쇠락을 향한 혼탁한 물결의 흐름을 풍속인물화라고 피해갈 도리는 없었습니다. 미술관을 나서는 내 뒤에서 나뭇꾼의 물음이 또 들려옵니다. “세월을 좀 낚으셨냐니까?”  “.....................”


   친구가 마련한 안동국시집에서 일행들의 막걸리잔속에 내가 미술관 뜰에서 슬쩍 따온 감국을 한 송이씩 띄워주었습니다. ‘도라지 위스키 한 잔’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들국화 막걸리 한 잔을 앞에 두고 진한 낭만들을 마셨습니다. 나를 따라다니던 나무꾼의 물음에도 이제는 답을 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지난날에는 내가 세월을 기다려주질 못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세월이 나를 기다려 주지를 못하는 듯하네.” 깊어가는 시월의 밤은 그 깊이만큼이나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아서인지 발길은 다시 짙은 커피 향에 이끌렸습니다. 커피 집 창가에 앉으면 건너보이는 성벽 위 하늘이 허전합니다. 있어야할 달의 자리가 비어있습니다. 신윤복의 그림 속에 걸려있던 많은 달 중 하나는 분명 저기에 있던 성북동의 달을 가져다 놓은 것이라 여겨봅니다. 삼선교로 걸어 내려가는 어둑한 밤길을 채우고 있는 가을바람에 서늘함이 느껴집니다. 그 바람이 내 어깨에 걸쳐져 있는 낚싯대를 흔들고 갑니다. 집에 돌아와 내려놓는 고기 망태기에는 언제 누가 넣었는지 알 수 없는 고기 몇 마리가 들어있었습니다.

                                                               [2011.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