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내가 나로 돌아올 수 있는 그 투명한 시간.
햇살은 마치 그물망처럼 호수위로 번진다. 몽환적(夢幻的)이다.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사람, 아니면 나를 가장 그리워하는 사람
그 안타까운 사랑이 슬픈 안개가 되어 스리나가르 달호수의 창가를 밤새 서성거렸을 것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침식사를 간단히 마쳤다. 바쁜 여행길에서의 아침식사는 때로 번거로운 절차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관리인이 차려놓은 식사를 우아하게 먹어 주기만 하면 되니 배낭여행치고는 대단한 사치다.
어느덧 여행 열이틀째. 그새 짐을 꾸리는데 이력이 붙어 잠깐동안의 수고로 출발준비 완료다. 식사를 마친 뒤 숙박경비를 정산하고 났는데 관리인이 거실 탁자위에 놓인 여행자 정보 신고서를 작성하라고 한다. 그런데 그 신고서가 놓여져 있는 빅토리아풍의 앤티크 탁자는 다리 한쪽이 부러져 탁자윗판을 실짝 걸쳐놓고 있는 것임을 우리 일행은 이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진작 알고있던 터였다. 그래서 서로 서로 조심을 하고 있었는데 이 녀석은 그 탁자위에 신고서 양식을 슬쩍 올려놓고 그걸 작성하라며 능청을 떨고 있는 것이다. '어제 이미 작성해서 네 보스에게 전달했다'고 말해 주며 그 교활함에 몸을 떨었다. 탁자의 다리가 부러진 줄 몰랐더라면 출발즈음에 제대로 함정에 빠져 꼼짝없이 손해배상을 해 주었을 판이었다. 요구하는 배상청구 금액이 아마도 엄청났을 것이고. 참으로 입맛이 썼다. '지상 최고의 낙원'은 결국 인간의 이러한 삿된 탐욕에 의해 '잃어버린 낙원'이 된 것이 아니겠는가?
물의 도시, 스리나가르를 뒤로 하고 항로를 남으로 돌려 잠무(Jammu)로 향한다.
'스리나가르 - 레 - 마날리'구간은 중국, 파키스탄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역으로 옛날부터 테러리스트들이 차량납치도 많이 하고, 차량공격도 잦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높은 산맥들 아래 모래바람이 정겹게 산등성이를 휘돌아 가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지만, 이런 피비린내 나는 갈등과 긴장의 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직 한적하고 낭만적인 추억만을 담고 이곳을 벗어나게 되었으니 무디다고 해야할까, 행운이라고 해야할까?
인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난 해 10월 13일 파기스탄은 앙숙인 인도에 '최혜국(MFN)'지위를 부여하기로 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인도는 이미 15년 전인 1996년 파키스탄에 MFN지위를 부여한 바가 있어 이번 파키스탄정부의 결정이 양국간 교역증대와 함께 60여년간의 양국 적대관계를 해소하는데에도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꼭 그리되어 이 지역에 평화가 있는 축복의 땅이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잠무는 잠무 & 카슈미르(Jammu & Kashmir) 주(州;state) 남부의 중심도시다. J & K주는 카슈미르(이슬람), 잠무(힌두교) 그리고 라다크지역(불교)을 아우르는 면적 22만 2,236 평방킬로미터, 인구 1,000만명의 거대지역. 한반도 면적(22만 847평방킬로미터)보다 조금 넓은 크기다. 잠무는 바로 이 J & K주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하면서 카슈미르지방과 펀자브(Punjab)평원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겨울철이 되면 주도(主都;정치, 문화의 중심도시)인 스리나가르를 대신하여 J & K주의 주도가 되는 곳이다.
잠무는 시왈리크 구릉에 접하면서 체나브강의 지류인 타위강 연안에 펼쳐져 있는데, '인도철도의 종착역'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도시다. 우리의 여행경로와는 반대로 델리에서 스리나가르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경유할 수 밖에 없는 도시가 잠무이지만, 동네분위기가 삭막하고 심난해서 여행자들에게는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가고 싶은 도시 1순위라고. 그래도 아침 등교를 하는 어린 남녀학생들의 모습을 차창밖으로 바라보는 재미는 색달랐다. 무엇보다도 파키스탄에 접하고 있어서인지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의 모습이 아주 예뻐 보였다. 종(種)의 개선을 위한다는 의미에서 보자면 순혈주의만을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잠무시내에 위치한 숙소에 도착하였다.
우리 일행이 호텔로비로 들어서자 호텔직원들이 맥주잔 크기의 유리컾에 생수를 담아 쟁반에 받쳐들고 사람들 사이를 돌며 일일이 시원한 생수 한 잔으로 목을 축일 것을 권하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호텔을 찾아준 여행객들에게 환영의 정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국의 단체여행객들을 계속 유치하기 위한 비지니스의 목적도 있겠지만 대단한 환대가 아닐 수 없다. 대도시의 그럴듯한 호텔과는 달리 서비스마인드가 정착되었을리 없는 이런 외곽지역에서 말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인도에서는 병째 구입한 버틀링이 된 생수가 아니면 절대로 물을 마셔서는 안된다고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누누히 주의를 받았고, 지금까지 이를 철저하게 실행을 해 오고 있는 우리 여행객들로서는 이 호의를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거절해야 할지의 결정이 몹시 난처한 상황이 된 것이었다.
일행들이 순간적으로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웅성거리는 사이에 여행사의 길잡이인 타타씨가 나서 받아마시지 말라고 상황을 정리했지만, 이후 호텔측은 그 컾에 담긴 생수를 어찌 처리했을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의를 거절당한 기분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여지껏 마음이 쓰인다. 인도 현지인들은 그런 생수는 물론이고 길거리에서 수돗물을 마셔도 전혀 탈없이 잘 살고 있건만 우리만 지나치게 요란을 떠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논산훈련소 훈련병시절에 유격훈련을 나갔다가 논바닥에 고인 물로 식기도 닦고 마시기까지 했던 일이 떠오른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도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아직 사회적 인프라가 변변치 못한 인도를 우리식의 잣대로 평가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외관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살아있는 본래대로의 영혼.
J & K의 끝자락에서 눈이 시리도록 황홀한 희말라야의 하늘을 본다. 이 청아한 하늘 아래에서 오늘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자문해 본다. "그것은 내 내면의 영혼에 충실하는 것!!!" 그렇다면, 지금 내가 직면한 슬픔의 극복도 내 영혼의 진실한 소리에 귀 기울임으로써 그 회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지난 가을 10월 10일(월) 코엑스 영화관에서 인도영화 "세 얼간이(3 idiots)"를 관람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배경화면인 판공초에 나는 다시 인도여행의 추억에 또 한번 흠뻑 빠져들었다. 마주 잡은 두 손끝이 뜨겁도록 간절히 빌어본다. "이 아름다운 인연이여, 영원하라!!!"
화면처리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영화속의 판공초 호수의 쪽빛은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감동의 색깔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치 뒤떨어 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영화 스토리는 대충 다음과 같다.
엘리트 공학도를 양성하는 인도의 명문 공대 학장은 학생들에게 마치 자동차 경주에서 처럼 둥지밖으로 다른 알들을 떨어뜨려서 부화하는 '뻐꾸기 되기'의 생존법칙을 강요한다. 그런 생존법칙을 못따라 잡은 학생들의 자살시도가 이어지고. 반면에 이런 승자독식의 인생론에 저항하며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주인공 란초와 두 친구들은 학교에서 왕따 취급을 당하는 얼간이들이다. 자살한 학생의 장례식장에서 란초는 학장에게 항의한다, "이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고.
정신의 줏대인 얼에 맛이 간 얼간이판 새상살이. '일등되기 = 돈 = 성공"을 추종하는 길과 자신의 내면과 접속해 자신만의 길을 가는 방식 중에 어느 쪽이 진짜 얼간이인지 봄이 시작되는 이 3월에 되새겨 볼 문제다.
*Jammu가는 길에서 만난 노점상가
*저분들의 어깨에 멘 수제품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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