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 그치면/내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맑은 하늘에/종달새만 무에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香煙과 같이/땅에선 아지랭이 타오르것다. 이수복 님의 "봄 비"(1955, 현대문학)라는 시다.
이수복이라는 분이 어떤 시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봄비 내라는 서정을 이렇듯 담담하게 그려내다니, 그것도 1955년에.1955년이 어떤 시절이던가? 전쟁이 끝난지 두 해가 지났다지만 전쟁의 상흔은 상기 여기저기 뒹글었을 것이고, 민초들은 당장의 호구를 위해 그 슬픔마저 아득히 잊어야 할 때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날 봄을 재촉하는 봄비는 내리고 봄꽃들은 그리도 무심하게 피어나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 온종일 봄비가 내리다. 난 비를 좋아한다. 수줍게 내리는 봄비도 좋고, 여름철 천지를 흔드는 우르릉 꽝꽝 소낙비도 좋다. 떨어진 낙옆을 두드리는 가을비도 정감있다. 내가 언제부터 비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곰곰히 되집어 본 적이 있다. 결론은, 군대시절 병영생활에서 시작되었고, 영국생활과 절집생활을 거치면서 비에 대한 호감이 굳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군생활을 해 본 이라면 다들 공감하겠지만, 군대에서는 눈이 온다고 휴식이 주어지는게 아니다. 훈련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되고(때론 더욱 강도높게), 여기에 더하여 연병장 눈치우기에 인력동원되기 일쑤다. 눈치우고 돌아서면 일렬로 쓸어놓은 빗자욱위에 다시 눈은 덮히고. 왜 군대에서는 눈 그치기를 기다려 한 번에 눈을 치우지 않나 모르겠다. 그러나, 비는 정 반대의 결과를 지어낸다. 비가 오면 훈련일정은 모두 취소. 대신 외부 훈련일정은 내무반에서의 정훈교육이나 주특기교육으로 대체된다. 교본대로라면 50분 교육에 10분간 휴식이지만, 30분 교육에 30분 휴식도 눈감아 줄 수 있고, 웬만큼 고참이 되면 휴식시간에 침상에 모포깔고 눈도 붙일 수도 있으니, 이게 웬 횡재냐? 이렇게 날씨에 따른 희비의 극명한 대비로 말미암마 갖게된 비에 대한 호감은 이후 영국에서의 생활을 통해 더욱 굳어 지게 되었다. 런던지역은 사시사철 비가 내린다. 부활절 이후 몇 개월 찬란한 계절이 있기는 해도 평균적으로 볼 때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비가 내려 공기를 정화시켜주고 또 뒷 뜰의 초록을 더욱 생기있게 해 주곤 한다. 영국 사람들이 늘 horrible weather라고 입에 달고 사는 겨울철에 부슬부슬 내리는 안개비도 내겐 아름답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어둑한 거리에 네온사인등불이 밝혀지면 온 천지가 푸르른 색깔마저 띄는게 으시시 하긴 하지만. 이 또한 적응하면 클래식 음악 한 곡에 향기로운 차 한잔이면 나름의 낭만에 젖을 수도 있다. 그리고, 절집생활을 할 때 여름철 산 위에 자리잡은 절 방에 앉아 있으면 문득 저 멀리서 후드득 소리가 들려오며 일순간 건조한 흙냄새가 확 몰려오는 경우가 있다. 눈을 들어 밖을 내다보면 그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은 어둑해 지면서 산 아래 저 들판에서 소낙비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려오는게 보인다. 기막힌 풍경이다. 때론 이 소낙비가 이곳까지 다다르기 전에 밖에 널어 놓은 이불이나 빨래를 걷기위해 슬리퍼건 신발이건 닥치는대로 발에 걸치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한바탕 소동을 벌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봄비 치고는 제법 많이 내린다. 이 비가 그치면 가로수 나무가지는 신록을 머금을 것이고, 그래 아지랭이는 또 졸립도록 피어오르 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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