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영화 제인에어 관람

양현재 사색 2011. 5. 22. 22:45

일요일 아침의 여유로움을 잠시 접어두고 일찌감치부터 부산을 떨다. 수술 후 아직도 몸이 예전같이 않은 만울님과 함께 롯데마트로 장을 보러 나서기 위함이다. 이른 아침이라 매장도 한산해서 이리저리 둘러보기도 한결 여유롭다. 장을 마치고 나서 꽃가게에서 장미 4송이를 샀다. 2송이는 내가 만울님께 건네는 빨강색으로, 2송이는 만울님이 내게 전하는 분홍색으로. 꽃집 여주인이 센스있게 이 4송이의 장미꽃에 어울리는 파란색의 부푸름이라는 장식꽃 2송이와 함께 예쁘게 포장해 주었다. 이렇게 하루 늦은 부부의 날 행사를 우리 부부만의 방식으로 치루었다. 남보긴 싱겁더라도 서로의 사랑확인을 우리는 이렇게 수채화 그리듯 하고 있는 것이다.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와 콘플레이크스로 점심을 간략히 때우고 곧바로 대한극장으로 향했다. 오늘 우리 부부의 문화행사는 영화 제인에어(Jane Eyre) 관람이다. 제인에어는 만울님이 영국에서 공부할 때 시험준비한다고 소설책을 달달 외우다싶이 공부한 바가 있는데, 그 때 옆에서 보기에도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지금도 아이들 영어교습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이 때 쌓은 내공의 덕일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제인에어는 1847년에 출간된 샬롯 브론테(Chalotte Bronte)의 작품이다. 영국 요크에서 태어난 샬롯은 그의 여동생들인 에밀리, 앤과 함께 브론테 자매로 각기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성취를 이루었다. 그러나 6명의 형제, 자매들 중 가장 늦게 까지 살아남았지만 그녀 역시 39세의 나이에 눈을 감았다. 영국에 사는 동안 York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브론테자매의 무덤가 벤치에 앉아 폭풍의 언덕위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기억이 난다.

 

제인에어는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 100권 중 하나이자 로맨스 소설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번 영화는 지난 4월에 개봉한 21세기 버젼으로 원작소설을 22번째로 영상화한 작품이 된다. 제인 에어는 낮은 신분에 가난한 고아로 자랐지만 자신의 운명에 좌절하기 보다는 스스로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당당한 개성을 갖고 있다. 가정교사로 들어간 대저택 주인인 로체스타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할 말은 하고야 마는 당당한 자세를 보이는 제인은 현실적이면서도 파격적인 인물이다. 영화 전편에 걸쳐 구속받고 억압적인 삶으로부터 자유로워 지기를 끝없이 추구해 나가는 제인의 강인한 모습은 남성중심의 사회에 대한 강한 저항과 반감을 갖고 더 나아가 여성에게 동등한 기회와 대우가 주어지길 바라는 여성상을 보여 준다는 의미에서 여성사적 의미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영화에서 제인 에어의 역은 배우 미아 와시코브스카가 맡았는데, 여성스럽고 가녀린 외모와 아이처럼 순수한 내면을 지난 이 배우의 캐릭터와 잘 맞아 떨어진 듯 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소녀의 불안하지만 호기심 어린 눈망울로 바깥 세상의 자유를 꿈꾸는 모습을 잘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운명은 태어날 때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자유의지로 운명이 개척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녀린 여성을 통해 확인시켜 준다는 점도 교훈적이다. 영국적 분위기에 호감을 갖지 못한 관람자들에게는 boring한 영화로 주말 하루를 허비했다고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게 영국 영화의 묘미라면 묘미인지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 난 만울님의 반응은 역시나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소설 속에 그려진 감정의 흐름을 120분 미만의 화면으로 그려낼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그건 문학에 대한 모독이라는 것이 만울님의 믿음이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오랫만에 영국의 평화롭고 아름다운시골풍경을 마음껏 냄새 맡을 수 있었고, 영국식 영어 액센트는 고향에서나 느낄 수 있는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 일으켜 주었다. 우리 부부는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이나 자리에 그대로 앉아 York지역의 황량한 풍광을 음미해 보았다. 오늘 우리 부부는 영국에 어서 가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병만 또 도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