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춤"은 조정래씨의 2010년 장편소설이다. 작가의 최신작이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작가의 아버지로부터 국어를 배웠다. 그 분이 조종현 선생님이시다. 시조시인이자 승려로서, 1930년부터 조선불교 청년 총동맹 중앙집행위원 등 불교계 요직을 거쳤고, "시조문학"을 발간하는 등 우리 시조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신 분이다. 수업시간에 곧잘 수염을 쓰다듬으셨던 것과 어느 제자가 본인의 성함 세 글자를 한 글자로 합쳐 조각한 도장을 선물받고 우리들에게 자랑하시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중학교 3학년 때인 1969년에 발표한 "나도 푯말이 되어 살고 싶다"는 제목의 시조는 뒷날 1980년대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조정래씨는 전라남도 승주에 있는 현 태고종 본찰인 선암사에서 태어났으며, 보성고등학교 52회이니 내게는 11년 선배이기도 하다.
1980년대말 "태백산맥"을 읽고 받은 감명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소설을 통해 우리 현대사에 대한 나의 역사관을 송두리채 바꾸게 되었는데, 이 때 받은 감동이 워낙 커서 이후 순천, 여수, 강진, 화순, 보성, 벌교 등 소설 속의 현장들을 혼자 답사하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우리나라 작가 중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의 자격을 가진 작가로 단연 조정래씨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작가의 전기 작품들이 분단과 이념의 문제, 비전향 장기수와 역사밖으로 밀려 난 포로들의 인권문제 등 왜곡된 민족사에서 잉태된 개인의 훼손된 삶과 척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민초들의 고뇌와 방황을 다루었다면, 이번 작품은 현대로 넘어와 소위 가진 자들의 파렴치한 행태를 정면에서 날카롭게 파헤치고, 오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기업, 재벌기업들의 비리와 천민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우리 사회의 미래상을 조명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허수아비 춤의 작품성은 태백산맥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재벌그룹의 비리의 실상이 치밀하지도 생생하지도 새롭지도 못하고, 정경유착에 대한 장면의 현실성도 크게 감동적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른 장면의 전환, 등장인물들의 걸죽한 입담과 속담이나 인물들의 겉과 속을 철저하게 대립되도록 묘사함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움직이는 부조리한 야만의 존재를 파노라마적으로 파헤치는 기법은 작가의 높은 내공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한국 사회를 독재체제에서 해방시키고 민주화 혁명의 축복을 선사한 486세대는 경제적 부패, 특권계층의 부패를 통해 이 시대를 병들게 하는 비극의 형상으로 타락하게 만다. 이 작품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성세대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망각하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성찰해 보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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