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인도로 가는 길(기행3) - Delhi에서의 하루

양현재 사색 2011. 8. 30. 00:35

밤새 후덕지근한 기운이 방안을 스멀스멀 기어든다. 에어컨을 켜자니 옆자리의 K의 잠을 깨울 것만 같아 뒤척거리다 새벽을 맞이했다. 먼거리를 날아왔지만 몸은 가뿐하다. 라면에 햇반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니 아침나절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 좋다.

 

오후 6시에 다음 행선지인 Manali로 이동하기 까지 한 나절을  온전히 이곳 Delhi시내를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Delhi는 인도의 상업, 공업, 정치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다. 뉴델리와 올드델리를 합쳐 광역도시권의 인구는  2,200만명에 이르고 있으며, 뉴델리는 인도의 수도로  행정구가 자리잡고 있다.

 

이번 여행의 일정은 이곳 Delhi에서 시작해서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짜여져 있어, 일정의 마지막날 오후에 시내관광시간을 추가로 보낼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Delhi에서의 전관광일정을 절반으로 나누어 오늘은 그 절반의 일정을 소화하도록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붉은 성(Red Port), 코넛 플레이스(Connaught Place)와 찬드니 촉(Chandni Chowk)을 둘러 보기로 했다.

 

일행 중 4명이 이 일정에 따르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교통수단은 오토 릭샤(Auto Ricksaw)를 이용하기로 했다. 메트로가 개통되기 전까지만 해도 델리 시내 여행의 주된 교통수단이었으나 지금은 그 이용비중이 많이 줄고 있다 한다. 둥글 짜리몽땅한 특유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 오토바이를 택시모양으로 개조한 듯이 보였다. 여행자들과 현지인 사이에서는 '인디언 헬리콥터'라는 애칭으로 통한다고 하는데 내 생각으로는 어디고 안가는데 없이 쌩쌩 달리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여지지 않았나 싶다. 델리 주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거의 모든 오토 릭샤에 전자식 미터기를 달긴 했지만, 한번도 미터기를 사용하는 걸 보지 못했다. 요금은 철저하게 흥정에 따라 결정된다. 한 두 명, 많게는 서 너명의 운전수에게 가격을 물어본 뒤 적절히 후려 치는 식이다. 한 대의 오토 릭샤에는 3명의 승객을 태우는게 통상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4명을 태우기도 하여 정해진 승차정원이 있기는 한건지 잘 모르겠다. 한 번은 일행 4명이 함께 탔는데, 나는 운전석 옆에 엉덩이만 겨우 걸친 채 두 팔로 앞뒤 쇠막대를 움켜잡은채 거의 매달려 가는 형상이 되었다. 문제는 복잡하기로 악명이 높은 델리시내를 요리조리 비집고 달리는 오토 릭샤에 이런 식으로 매달려 간다는 건 목숨을 반쯤 내놓은 곡예나 다를 바 없어서, 도착지에 도달하고 나면 팔과 어깨뼈에 감각이 거의 없을 지경이 되어 버린 다는 점이다. 거리의 오토 릭샤는 거의가 아주 낡은 상태여서 웬만한 고갯길에서는 힘을 제대로 못쓰고 겔겔거려 운전수와 승객들을 애타게 할 뿐 아니라 오토 릭샤에서 뿜어대는 매연을 고스란히 들여마셔야 하는 고역도 승객들이 감수해야만 할 몫이다.

오토릭샤를 타고 델리시내를 달리는 건 우리들에게는 거의 살인적인 경험이었다. 자동차, 오토릭샤와 보행자가 서로 얽혀 부딪힐듯 부딪힐듯 곡예운전을 하는 걸 뒷자리에 앉아서 지켜보며 '아악, 아악!!' 비명을 내지르지 않고 태연하게 군자연하며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경적소리는 귀를 찌르고, 매연은 코와 목을 따갑게 하고, 긴장 때문인지 더운 날씨때문인지 땀은 자꾸 눈 속을 파고 든다.  

 

요금을 거리에서 흥정해야 하는 일이 처음에는 생경하고 쑥스러웠지만 차츰 요령도 생기고 나름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복잡한 델리시내를 용케도 달려 목적지에 도착한 운전수의 수고를 생각하면 탑승전에 흥정한 당초의 요금만 지불하고서는 도저히 돌아설 수가 없었다. 그들의 수고를 바게인했다는 미안함과 그들의 노고에 대한 대가의 일부를 내가 임의 착취한다는 죄책감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흥정가에 몇 푼이고 더 쥐어주곤 했는데 이게 우리 식의 덤문화의 본능적 발로인지는 몰라도 훨씬 인간적인 거래를 했다는 느낌을 갖게 해 주었다.

 

붉은 성은 무굴제국의 황제이자 건축광이었던 사 자한(Shah Jahan)이 1639 ~ 1648년에 걸쳐 공들여 지은 성이다.무굴시대에 지어진 성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성 또한 궁전이자 전투요새의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성벽 앞에는 10m 깊이의 해자가 있고, 각 성의 문은 전투용 코끼리가 전속력으로 들이받지 못하게 급격한 커브를 지니게끔 설계되어 있다. 붉은 성의 입구인 라흐르 게이트(Lahore Gate), 라흐르 게이트를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최고급 쇼핑몰인 찻타 촉(Chatta Chowk), 황제나 왕자들이 지나갈 때 음악을 연주하던 장소인 나우밧 카나(Naubat Khana), 왕의 공식 접견장인 다와니암(Diwan Am) 등등 제국의 영화를 보여주는  왕족들의 처소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 무굴제국 최고의 전성기에 지어진 붉은 성의 위용은 당당하기 그지 없다. 인도에는 이 붉은 성을 포함하여 모두 15개의 세계문화유산(World Heritage Sites)이 존재한다. 나는 외국을 여행하면서 이들의 건축물의 웅장함을 보면서 종종 우리 고대 건축물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가 있다.  그 때마다 웬지 우리 것은 왜소하고 초라해 보이는 열등의식(?)을 숨길 수 없었다. 물론 문화의 수준을 규모로만 비교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들의 문화가 침략과 지배라는 배경하에서 자연스럽게  건축양식에 있어서 힘의 과시에 바탕을 두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 아니었을까? 그래, 대신 우리에게는 디테일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있지 않던가?

 

올드델리의 가장 큰 재래시장통인 찬드니 촉(Chandni Chowk)과 델리 최대의 상업 및 비지니스 거리인 코넛 플레이스(Connaught Place)를 둘러보며 인도인의 일상을 더듬어 보았다. 코넛 플레이스에서 짐가방 하나를 흥정끝에 사갖고 나오는데 '웬걸, 상가 밖 거리에서 파는 물건이 훨씬 싼게 아닌가'. 입맛이 쓰다. 인도 여행중에 사용하다 버릴 생각으로 물건의 질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산 물건이지만 내 가격 협상력이 겨우 요 정도란 말인가 하는 자책이 들었다. 첫 날 보기좋게 한 방 먹은 꼴이 되었다.

 

시내를 걷다 보면 어렵지 않게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곳 인도까지 와서 몸으로 세상을 체험하는 그들의 용기가 대견하고 부러웠다. 이게 우리의 국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고, 그들의 부모세대인 우리들 보다 한 걸음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중에 목포에 사는 어머니는 초등학교 6학년 아들과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딸을 데리고 이 여행길을 나섰다. 대단하지 얺은가? 그 어머니의 용기와 결단력이 그렇고, 어머니를 따라 나선 아들, 딸이 또한 기특하다. 많이 보고 많이 담아 가기를 빌어 본다.

 

오늘 일정에는 룸메이트 K와 그밖에 S, H 이렇게 4명이서 동행을 했다. 첫 날 부터 더운 날씨에 오토 릭샤를 타고 이곳 저곳 이동하는 피곤한 여정이었지만 일행 모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리하여 앞으로 전개될 우리들의 여행의 본격적인 일정이 자못 기대되는 것이다. 미지의 세계로 향한 비밀의 문을 열어 나가듯 말이다.

 

 붉은 성(Red Port)

 

외벽 보수공사 중인 붉은 성

 

붉은 성의 입구 - 라흐르 게이트(Lahore Gate)

 

나우밧 카나(Naubat Khana)

 

디와니카스(Diwan-i-Khas)에 있었다는 세상 최고의 화려함을 자랑하던 황제의 옥좌(일명 공작좌;Peacock Throne)의 모형인가?

 

라흐르 게이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장신구 상가(찻타 촉;Chatta Chowk)

 

 델리 외곽도시의 풍경

 

 

 

델리시내 - 시내 중심가에는 신호등이 보인다